37개월 된 우리 아이는 잘 때 내 배꼽을 만지작거리는 버릇이 있다. 내 팔을 베개 삼아 누운 다음 한쪽 손을 항상 내 배 위에 올리고 배꼽 어디 있냐며 찾는다. 배꼽을 ‘무사히’ 찾고 나면 이 손가락 저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다 쌔근쌔근 잠이 든다. 어린이집에 다녀와 오후엔 할머니와 지내면서도 밤에 잠은 꼭 엄마와 함께 자야 하는 이유도 그래서다. 할머니 배꼽으로는 안 된단다.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부터 내내 별 보며 퇴근하는 날이 이어졌다. 집에 도착하면 아이가 이미 자고 있는 날이 많았다. 이제 엄마 배꼽 없이도 잘 자는구나, 많이 컸나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이젠 아침마다 눈을 뜨자마자 배꼽을 찾기 시작했다. 출근 전 씻고 옷 입을 시간도 부족한데 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뜬 아이가 엄마 도로 누워서 배꼽 달라며 칭얼댄다. 요 며칠 사이 밤에 제대로 ‘배꼽 맛’을 못 본 탓이겠거니 싶어 조금 안쓰러운 마음에 잠시 아이에게 배꼽을 내준다. 엄마 품에 폭 안겨 배꼽을 만지작거리는 동안 아이 눈빛이 그렇게 평온해 보일 수가 없다.
아이와 부모의 스킨십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잘 알려져 있다. 스킨십을 과학으로 말하면 촉각자극이다. 특히 아이가 어릴수록 정보의 상당량이 촉각을 통해 뇌로 들어간다. 어린 시절 촉각자극을 충분히 받지 못한 아이는 면역력이 떨어지고 뇌 신경회로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을 수 있다.
우리 아이가 자라는 환경을 곰곰 생각해봤다. 텔레비전과 인터넷 책 같은 시각자극이 넘쳐난다. 상대적으로 촉각자극은 부족해 보인다. 엄마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평소보다 많았던 최근 아이가 배꼽에 유달리 집착하게 된 게 촉각자극에 더 목말라 있다는 증거 아닐까 싶어 미안해진다.
인체의 감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촉각은 특히 매력적이다. 시각이나 청각보다 압력이나 온도 진동 등 수치화가 가능한 물리적 데이터를 많이 감지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려움도 있긴 하다. 데이터 양이 워낙 방대한 데다 뇌로 전달되는 과정도 매우 복잡하다. 아직까지 촉각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하는 이유다. 이처럼 인공촉각을 만드는 연구 분야는 ‘햅틱스’라고 불리며 최근 각광받고 있다.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이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부모를 잃었을 아이들이 안쓰럽다. 햅틱스 기술이 좀더 일찍 발전했더라면 그 아이들에게 아빠 손길과 엄마 품이 돼줄 수 있었을 텐데.
임소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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