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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론스타 그 8년의 악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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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론스타 그 8년의 악연

입력
2011.03.2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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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렇게 꼬이는 일이 또 있을까. 매듭이 풀리나 싶으면 엉키고, 가까스로 끝내나 싶으면 다시 원점으로 되돌아오고. 그렇게 제자리만 맴돌기를 벌써 8년이다.

론스타 얘기다. 미국 텍사스에 뿌리를 둔 사모펀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건 2003년 10월. 사모펀드가 투자한 곳에서 이익을 회수하고 빠져 나오는 데 보통은 3년, 길어도 5년을 넘지는 않는다. 론스타도 이렇게까지 외환은행에 장기 체류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을 것이다.

수사ㆍ재판 다 겪은 '나쁜 아이콘'

론스타는 금융감독원, 감사원, 국세청, 그리고 검찰수사까지 받았다. 아마도 한국의 정부기관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조사와 수사는 다 받았을 것이다. 탈세가 적발돼 거액의 세금을 추징 당했고, 법 위반으로 대표자는 감옥까지 다녀왔다.

어디 그뿐인가. 론스타는 '나쁜 자본'의 아이콘이 됐다. '국부 유출' '먹튀' '투기자본'으로 불리며 소중한 한국민의 재산을 빼가는, 대한민국 금융산업의 어수룩함을 이용해 배만 불리는 부도덕한 자본으로 각인됐다. 그러는 사이 2006년 국민은행, 2008년 HSBC로 이어진 두 번의 매각 시도는 모두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다가 파기됐고, 이제껏 한국에 발이 꽁꽁 묶이게 됐던 것이다.

론스타는 지금 세 번째 탈출을 시도 중이다. 외환은행을 하나금융지주에 팔아 4조7,000억원의 차익과 함께 한국을 벗어날 꿈에 부풀어 있었고, 열흘 전만 해도 이 꿈은 100% 실현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외환은행 주가조작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취지 파기환송 판결로 일이 꼬이더니, 금융위원회는 이 판결을 이유로 대주주 자격판단을 유보하면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승인도 기약 없이 미뤄버렸다. 어쩌면 론스타는 몇 년을 더 한국에 머무를 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이 일방적으로 손해 본 것은 없다. 조사 받고 비난 받는 동안에도 챙길 것은 다 챙겼다. 온갖 눈총 속에서도 지분 매각과 배당으로 최초 투자원금(2조1,500억원) 이상은 이미 건졌다. 그들로선 지긋지긋한 한국을 빨리 떠나고 싶겠지만, 설령 당장 못나가게 된다 해도 어떻게든 이익은 계속 회수해나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론스타에게 특별히 자비를 베풀 이유는 없다고 본다. 법을 위반했다면 벌을 받게 해야 할 것이고, 세금을 안 냈다면 무겁게 물려야 할 것이다.

문제는 론스타가 아니다. 이미 긴 시간이 흘렀는데, 또 몇 년을 끌게 된다면 우리 금융산업이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도 커진다. 첫째는 입구와 출구의 비대칭성이다. 귀책사유가 어디에 있든 론스타와 긴 공방을 이어오면서,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금융은 입구만 넓고 출구는 좁은 시장'이라는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투자 문호는 활짝 열어뒀으면서 정작 이익 회수는 힘들게 하는 그런 시장에 과연 누가 투자하려 할는지. 한국의 금융시장이 더 이상 외국자본의 놀이터가 되어선 안 되겠지만 그렇게 안 되게 하려고 시장 자체를 외국인 금지구역으로 만들어선 더욱 곤란하다.

둘째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M&A다. 평화적 기업인수이든, 잔혹한 기업사냥이든 M&A는 자본시장의 꽃이다. 당사자들에겐 고통이 될 수도 있지만, M&A를 통해 기업의 신진대사는 촉진되고 자본시장은 활성화된다.

법원이 M&A를 결정하는 나라

그런데 지금 M&A는 시장이 아니라 법원이 결정하고 있다. 현대그룹과 현대차그룹이 다퉜던 현대건설이 그랬고,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도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시장도, 시장을 규율하는 금융당국도 오로지 재판정만 바라보고 있다. 판사가 결정하는 M&A가 과연 정상일까. 한국의 금융산업 발전을 위해,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정말로 불행한 풍조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론스타와의 긴 악연은 끝내야 한다. 론스타도 지겨울 것이고, 국민들도 이젠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이 질긴 인연의 종결은 금융당국의 몫이다. 8년을 끌어왔으면 됐지 여기서 더 끈다면, 그건 정부도 아니다.

이성철 경제부장 s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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