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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씨 장편소설 '생강' 고문기술자 이근안 모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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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씨 장편소설 '생강' 고문기술자 이근안 모델로

입력
2011.03.20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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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 정부 시절 고문기술자로 악명이 높았다가 요즘은 '반공목사'로 활동 중인 이근안씨를 모델로 한 소설이 나왔다. 소설가 천운영(40)씨의 두 번째 장편 <생강> (창비 발행)이다.

"새끼발가락에 전선을 연결해라. 오른쪽엔 음극을 왼쪽엔 양극을 넣어 주어라. 그것이 하늘과 땅의 이치다. 전원을 올려라. 그리고 놈의 목소리를 들어라. 미친 당나귀처럼 질러대는 괴성을 들어라"(11, 12쪽), 끔찍한 전기 고문 장면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고문기술자 '안'과 그의 딸 '선'의 시각을 통해 폭력의 벌거벗은 내면과 그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고단한 과정을 섬세하게 그린다.

특히 소설의 중심적 공간을 이루는 곳은 '안'이 경찰의 수배를 피해 10여년간 숨어지내는 자신의 집 다락방이다. 실제 이씨가 1989년 민주화 인사들을 고문한 사실이 폭로돼 경찰의 수배를 받자 도피했던 은신처가 자신의 집 다락방이었다. 소설은 그의 딸 '선'이란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다락방에 은신한 '안'과 다락방 아래에 사는 딸 '선'간의 내면의 대결을 중심 축으로 삼는다. '안'은 도피 중에도 악을 제거하기 위해 악의 힘을 빌렸을 뿐이라고 믿는, 자신의 고문을 반성할 줄 모르는 맹목적 폭력의 화신. 갓 대학에 입학해 캠퍼스의 낭만에 부풀어 있던 '선'은 아버지로 인해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학교까지 그만두게 되는데, 아버지로부터 애써 도피하고자 했던 그는 고문 피해자들의 삶을 접하면서 점차 아버지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대결한다. "당신이 모든 공포였기에 나는 당신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공포란 피를 얼리고 몸을 굳게 만드는 것이므로. (...) 그렇게 감은 눈을 뜨고 막았던 귀를 열었다. 당신을 똑바로 쳐다보기 시작한 순간, 더 이상 당신이 두렵지가 않았다"(236쪽)란 구절이 이 소설의 핵심적 전언이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직시하라는 메시지다.

공권력에 의해 자행된 고문이 국가의 폭력적 성격을 드러내는 소재일 수 있는데, 작품은 가족 서사의 틀로 진행되면서 폭력의 외연은 제한되고, 그 내면 역시 다소 동어반복적이거나 시적인 언어로 처리돼 아쉬움을 남긴다. 차라리 소설은 폭력의 세계에 대한 성찰이기보다는, 로맨스적 감수성의 여대생에게 '현실의 간난고초를 직시하는 리얼리스트가 되라'고 전하는 이야기로 읽힐 수 있다. 소설 속 다락방은 '선'이 어린 시절부터 로맨스 소설을 읽으며 낭만적 꿈을 키우던 곳이었다가 아버지에게 빼앗기는 장소로 설정돼 있다. 작가가 20여년 전의 유명한 사건을 지금 굳이 끌고 온 것도, 이 다락방을 매개로 지금의 젊은 여성들에게 할 말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다락방의 몽상에 젖어 있지 말고 다락방에 숨어 있는 현실을 똑바로 보라고.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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