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기업과 LIG건설. 두 회사는 ▦대기업 계열 건설사이면서 ▦최근 자금난으로 쓰러졌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꽤 탄탄한 모(母)그룹을 뒀으면서도 이들이 줄줄이 쓰러지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대마불사의 신화는 사라졌지만, 그래도 대기업 건설사들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은 낯선 광경이다.
당연히 동반부실의 고리를 끊겠다는 판단이 앞선 결정이겠지만, 건설업계와 금융계에선 대기업들이 건설계열사에 대해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얄팍한 행태로 접근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감탄고토(甘呑苦吐)
21일 기업회생작업(법정관리)을 신청한 LIG건설은 LIG그룹을 모기업으로 둔 건설사. LIG그룹은 국내 손보업계 2위권인 LIG손해보험의 모그룹이다. 비교적 후발주자로 주택사업에 진출한 LIG그룹은 사업확장을 위해 주택전문건설사인 건영과 토목 중심의 SC한보건설을 잇따라 인수합병하며 주택ㆍ토목ㆍ해외시장까지 영역을 넓혔다. 사업초기 주택 비중이 90%에 달하던 기형적 사업구조도 토목이 40%를 차지할 정도로 개선됐고, 시공능력평가 순위도 2007년 97위에서 지난해 47위까지 급등하며 M&A의 후광을 누렸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본격화한 시장 침체로 ▦부채비율은 2006년 56%에서 지난해 9월 187%까지 급등했고 ▦2008년 862억원이던 단기차입금은 지난해 3분기 4,000억원으로 ▦장기차입금 역시 30억원에서 423억원으로 치솟았다. 이처럼 부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LIG그룹은 그 동안의 지원을 중단키로 하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달 가까스로 부도위기를 넘기고 워크아웃을 추진중인 효성그룹 계열 진흥기업 역시 같은 처지가 됐다. 효성그룹은 빈약한 건설사업을 강화하기 위해 2008년 주택ㆍ토목 중심의 알짜 중견 건설사인 진흥기업을 인수했고 이듬해 수주 1조원을 기록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을 구가했다.
하지만 곧바로 극심한 시장침체에 시달리며 회사 재무구조가 악화하자 2009년과 2010년 각각 705억원과 1,038억원의 두 차례 유상증자와 지난달 최종 부도를 막기 위한 190억원의 자금지원을 끝으로 워크아웃을 신청하며 '손털기'에 들어갔다.
대한전선이 토목사업 강화를 위해 인수했던 남광토건에 대해 지난해 6월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과, 한솔그룹이 한솔건설의 부실 확산을 막기 위해 지난해 말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 역시 대기업 건설계열사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연속되는 무책임
대기업 계열 건설사들이 속수무책 쓰러지는 이유는 뭘까. 가장 큰 이유는 건설경기침체다. 대기업들은 부동산 호황기에 앞다퉈 건설사들을 인수, 사세확장에 나섰지만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이 침체에 빠지자 M&A는 자충수가 되고 만 것이다. 일종의 '승자의 저주'인 셈이다.
문제는 대기업들이 사활을 다해 건설계열사를 살리기보다는 오히려 서둘러 계열사 정리에 들어가고 있다는 것. 물론 대기업들도 건설사를 살리기 위해 유상증자 등을 통해 수백억~수천억원씩 지원해온 만큼, 대주주로서 소임은 다했다는 입장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건설경기 침체가 장기화돼 자칫 다른 계열사까지 동반부실이 번질 것을 우려되는 상황에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의 지원은 중단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채권단의 한 관계자는 "그 동안 모그룹을 믿고 유동성을 지원했고 여신심사나 신용등급 판정에서도 후한 점수를 줬는데 갑자기 그룹이 손을 떼버리면 채권단만 채권 회수에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 역시 "아쉬울 땐 그룹을 내세워 금융권의 지원을 바라더니 이제 와선 나 몰라라 하는 격"이라며 재벌그룹의 이런 행태에 강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문제는 법정관리를 막을 방도가 없다는 점을 모기업이 교묘히 활용하고 있다는 것.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 사라지면서 워크아웃을 진행하기 어려워진 것을 안 기업들이 곧바로 법정관리를 신청해 부실경영의 부담을 던져버리는 징후가 엿보이고 있다"며 "모기업의 모럴해저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선덕 건설산업전략연구소장은 "전 계열사로 부실이 전염되는 막기 위한 그룹사의 조치라는 점은 이해가 되지만, 달면 삼키고 쓰면 뱉어버리는 식으로 접근하는 대기업들의 행태는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태훤 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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