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으로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만에 따뜻한 음식을 만났다. 국물의 뜨거움 때문인지, 고단한 피난 생활의 서러움 때문인지 눈물을 글썽이는 이들도 있었다.
22일 오전 이시노마키(石券) 중학교에서 만난 다카하시 유코(68)씨는 연신 가슴을 쓰다듬고 있었다. 지난 11일 대지진 당시 집에서 급히 피하다 넘어진 이후 통증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는 "진찰을 받았는데,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계속 아프다"고 말했다. 의료진으로부터 받은 건 파스 1장. 그는 아픈 가슴 때문에 아침식사가 담긴 일회용 그릇도 겨우 든 채 조심스럽게 젓가락질을 했다. 그릇에는 따뜻한 우동 국물이 담겨 있었다.
다카하시씨는 "전날까지 전혀 뜨거운 음식을 먹지 못했다"고 했다. 바나나, 차가운 주먹밥 등으로 끼니를 해결한 게 벌써 11일째다. 그는 "따뜻한 걸 먹으니 몸과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너무 고맙다"며 울먹였다. 2,000여명이 함께 숙식하고 있는 이 대피소는 여전히 기름이 부족해 난방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
사망자 1,348명, 실종자 1,471명으로 지진과 쓰나미의 집중 피해를 입은 이시노마키시는 현재 206곳의 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다. 대피 주민만 3만1,128명이다.
한노 노리코(68)씨의 표정도 한껏 밝아졌다. 급식소 앞에서 뜨거운 우동 그릇을 들고 기자에게 권하기도 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 차가운 물과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건 곤욕이었다"고 했다. 이날부터 급식소에 등장한 따뜻한 우동과 불고기덮밥 전문회사의 무료급식 덕에 식사 사정이 한결 나아졌다고 덧붙였다. 덮밥 급식소 앞에는 수백명의 피난민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대피소 생활은 여전히 궁핍하기만 하다. 오쿠다(43)씨는 "목욕이라도 한 번 제대로 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이 아직 공급되지 않고 있어 목욕은 물론 화장실도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상태다. 몸만 피신하느라 옷가지를 제대로 챙겨오지 못한 피난민들은 속옷도 아직 갈아입지 못했다.
대피소를 관리하는 시청 직원과 자원봉사자들의 피로도 극에 달하고 있다. 이시노마키 중학교 대피소의 경우 시에서 나온 직원이 2명, 학교 교사로 구성된 봉사자가 26명이다. 1인당 100명의 피난민을 보호하고 관리를 해야 하는 셈이다.
구호물품 분배나 대피소에 끝없이 걸려오는 안부 전화 등을 처리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자원봉사자 사이죠 도시유키(56)씨는 "몸이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라고 말했다. 시청 직원 나스노 스스무(63)씨는 "지진 발생 이후부터 쉴 시간이 없어 굉장히 피곤하다"고 하소연했다. 시청 건물 역시 400여명의 주민이 대피 장소로 이용하고 있다.
이시노마키를 떠나 센다이(仙台)로 향하는 도중, 마츠시마(松島)시에서 만난 한 경찰관은 쓰나미에 밀려 뿌리 뽑힌 나무들이 나뒹구는 곳을 가리키며 부탁의 말을 했다. "아마 곧 한국의 도움이 필요할 겁니다. 집을 잃은 사람들, 건강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한국의 전문인력이 와 줘야 합니다."
이시노마키(미야기현)=남상욱 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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