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걸린 소나무 그림들은 짙고 무겁다. 검은 바탕에 하얀 실핏줄처럼 가지가 뻗어나가고, 나무껍질은 단단하게 메말랐다. 가로, 세로 5m를 넘는 작품의 크기는 관객을 압도한다.
목탄으로 대나무와 매화를 그려 온 이재삼(51)씨가 이번에는 달빛에 비친 소나무를 그렸다. ‘달빛을 받다’고 제목을 붙인 그의 전시는 서울 통의동 아트사이드갤러리에서 내달 3일까지 선보인다.
이씨는 “대나무와 매화에 이어 세한삼우(歲寒三友)의 완성으로 보면 된다”며 “배병우 사진작가 등 많은 이들이 소나무를 소재로 작품 활동을 해 왔듯이 소나무는 한국인의 정서가 녹아있는 DNA와 같은 존재다”고 소나무를 그린 배경을 밝혔다.
흔한 소재지만 표현 방식은 다르다. 목탄을 사용해 푸른 소나무가 아닌 검은 소나무를 그렸다. 그는 “뭉개지기 쉽고, 가루가 많이 날려 회화로 잘 쓰지 않는 목탄을 묻어나지 않도록 하는 독자적 비법을 개발했다”며 “목탄을 사용하면 흑백이 강조돼 대상의 본질에 좀더 집중할 수 있는 효과가 난다”고 했다. 작품들은 목탄의 힘을 빌어 엄숙하고 강직한 느낌을 자아냈다.
작가는 당장 눈에 보이는 소나무보다 소나무를 비춘 달빛에 중점을 뒀다. 이씨는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 달빛을 받은 소나무를 그리는 것이 달의 이미지를 더 잘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달은 온전한 형태보다는 어머니의 정화수 위에 뜬 달, 가지에 걸린 달, 구름에 가려진 달이 더 멋있기도 하다. 달빛은 소나무를 감싸 안고, 오묘하고 신비한 느낌을 덧입혀 준다”고 했다. 그는 실제 1984년 대학원 진학을 위해 상경하기 전까지 20여년을 강원 영월군에서 보냈다. 당시 농촌 일손을 거들고 어둑해질 때면 달빛이 그가 돌아오는 길을 비춰줬다. 그 달빛이 고스란히 그의 마음에 남아 작품으로 표현된 것.
작품을 위해 작가는 지난 2년여간 경남 합천군의 송림, 지리산의 천년송, 경북 영양군의 만지송 등 300년 이상 된 소나무를 찾아 전국 방방곳곳을 떠돌았다. 소나무를 잘 관찰한 뒤 달빛이 비춘 풍경을 상상해 그렸다. (02)725_1020
강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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