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 물질 누출 공포에 발길 뚝… 점포 80% 휴업
"지난해 가을부터 한국의 아이돌그룹이 일본에서 인기를 끌면서 손님이 4배 정도 늘었어요. 하지만 지진으로 일본인의 발길이 뚝 끊겨 이제는 가게 문을 열면 오히려 손해가 나는 상황입니다."
일본 내 '한류(韓流)의 성지'라 불리는 도쿄 신오쿠보(新大久保)에서 한국음식점 '도야지야'를 운영하는 김덕구씨의 한숨이 깊었다. 그는 인건비와 식자재비라도 아껴볼 요량으로 15일 아예 가게 문을 닫았다.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성물질 유출이 걱정돼 이 참에 영구 귀국할까도 했지만 지금까지 일본에서 일궈온 생활터전을 등지는 게 쉽지 않다. 그는 연신 "머리가 복잡하다"고 했다.
일본 도후쿠(東北) 대지진의 여파로 도쿄의 한인타운도 초토화됐다. 도쿄의 전철역인 JR신오쿠보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한인타운에는 한국 음식점과 드라마ㆍDVDㆍ음반 판매점, 노래방, 미용실 등 한국인이 운영하는 점포가 300여 곳이 있다. 그러나 대지진 이후 이 중 80%가 임시 휴업 상태다. 방사성물질 유출 우려로 일본인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손님이 이전의 1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기 때문. 재난을 피해 가게 주인과 아르바이트생들이 한국으로 잠시 귀국하면서 문을 닫은 곳도 있다.
평소라면 저녁식사 손님으로 북적일 오후 7시,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들이 마주한 신오쿠보 골목은 간판이 모두 꺼져 컴컴했고, 음식점 실내는 썰렁했다. 음식점 '모이세'를 12년째 운영하고 있는 이종훈(71)씨는 "주말에는 일본인이 2~3만 명씩 몰려오는 번화가인데 이렇게 손님이 없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음식점에는 손님 1명이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다.
지난해 아이돌그룹이 인기를 끌면서 시작된 신(新)한류를 타고 문을 연 곳의 타격은 더 크다. 개업한 지 2달 된 음식점 '한사랑'의 점장은 "손님의 95%가 일본인인데 지진 이후 뚝 떨어져 이대로 가다간 한 달도 못 버티고 문을 닫게 생겼다"고 말했다.
신오쿠보는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외국인 여성들이 윤락가를 형성한 우범지대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가 인기를 얻고 한일 양국간 교류가 확대되면서 중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한인 점포가 생기기 시작해 한인타운으로 발전했다. 특히 지난해부터는 아이돌그룹의 인기로 10, 20대도 많이 찾아 호황을 누렸다.
도쿄=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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