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의약품이 없고 대피소에는 음식이 없어 사망자가 속출했다. 물자는 쌓여있지만 운송이 되지 않아서다. 수만명의 사망ㆍ실종은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이제 추위와 배고픔, 병마 등 도호쿠(東北) 대지진의 2차 피해가 일본 사회를 뒤덮기 시작했다.
“입원 환자의 음식은 다음주 분까지만 남아있어요. 뇌수술에 필요한 드레인(관)도 거의 바닥나 이대로 가다가는 진료시스템이 파탄날 겁니다.” 18일 마이니치(毎日)신문에서 후쿠시마(福島)현 아이즈와카마쓰(會津若松)시 중앙병원의 의사 가와카미 히로(30)씨는 비교적 피해가 적었던 이 병원에서조차 심각한 물자부족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지금까지 사무직원과 간호사들이 편의점, 슈퍼마켓에서 조금씩 사온 음식물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이제는 상점의 선반마저 동이 나 환자들이 최악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의료진이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현내 미나미소마(南相馬)시 시립병원은 의사가 8명밖에 남아 있지 않다. 시내 절반 이상이 대피지역으로 지정되면서 170명의 환자도 그대로 위험에 노출됐다. NHK방송은 이 도시의 오마치 병원에서 15일부터 의약품 아예 공급되지 않으면서 간경변 환자가 탈수증세에 빠져 최소 2명 이상이 숨졌다고 18일 보도했다. 이와테(岩手)현 가마이시(釜石)시의 한 병원에서도 70~90대의 고령 환자 9명이 정전으로 가래 흡입장치가 멈추는 바람에 사망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지바(千葉)시 179개 초ㆍ중학교 급식에서 반찬이 사라졌다고 전했다. 대지진 여파로 급식 센터와 식품 공장이 파손돼 식재료 공급이 중단됐기 때문이다. 지바현 학교급식위원회에 따르면 현내에서 급식으로 반찬과 밥을 주는 학교는 단 1%. 대부분 학교는 빵과 우유, 주먹밥이 전부다. 후지타 마사오미 소가초등학교 교장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학생이 많은 점을 감안하면 양을 줄여서라도 어떻게든 급식을 계속할 수밖에 없지만 권장 섭취 열량에는 턱없이 못미친다”고 푸념했다.
물류 마비 사태는 이들을 수렁으로 내모는 원인이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17일까지 간선도로의 94%, 항구의 60%가 기능을 회복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피소까지 연결된 도로망은 여전히 훼손돼 있다. 구호물자가 쌓여 있어도 적재적소에 전달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이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은 대지진 피해로 물 부족에 시달리는 가구가 약 160만 세대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43만명은 대피소에서 생활하는 이재민들이다.
게다가 연료까지 부족해 물자를 실어 나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일본 방위성은 이런 사정을 감안, 구호물자 운송 창구를 자위대로 일원화해 수송기나 헬리콥터로 대피소에 전달하기로 했다. 그러나 자위대는 실종자 수색도 병행하고 있어 수송 능력에 한계가 있다. 마이니치신문은 “물자 공급이 원활해지려면 최소 일주일은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행인 것은 피해 지역의 제조ㆍ소매업체들이 공장 가동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이다. 편의점 업체인 로손은 지난 15일부터 조업을 시작해 도호쿠 지역의 도시락 공장 4곳에서 하루 2만개의 도시락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일본 정부의 구호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 세계 최대 부자 나라 중 하나라는 믿음에도 금이 가고 있다”고 전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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