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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3월에 등장한 구세군 자선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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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3월에 등장한 구세군 자선냄비

입력
2011.03.1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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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을지로입구 역에서 구세군 자선냄비를 보았다. 3월에 웬 자선냄비?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땡그랑~ 땡그랑~ 일본을 도웁시다.”

지금 우리사회는 한마음으로 일본 돕기에 나서고 있다. 언론사들이 앞다퉈 모금운동을 전개하고, 한류스타를 비롯한 톱 배우들과 프로운동선수들의 거액 기부가 줄을 잇고 있다. 가수들은 자선공연을 벌이고, 대학생들은 거리로 나섰다. 대기업부터 초등학생까지 수많은 국민이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마치 우리가 재난을 당한 것처럼, 어쩌면 그 이상의 열기다. 상상할 수 없는 이웃의 대재앙 앞에서 해묵은 미움과 원망은 기억 저편으로 밀려난 것인가.

그렇다. 일본 대지진의 재앙은 인간이 자연 앞에 한없이 미약한 존재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삶과 죽음 앞에서는 인간사회의 아옹다옹 다툼이 더 없이 가볍게만 여겨진다. 하지만 우리사회가 이처럼 일본 돕기에 한마음이 된 데에는 단지 인류애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지난 세기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졌던 열등감과 피해의식에서 벗어난 자신감의 발로랄까.

삼성이 소니를 따라잡고 현대가 도요타를 바짝 추격하면서, 또 한류스타들이 일본 아줌마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우리의 열등감은 상당부분 해소됐다. 그 사이 일본이 상대적인 침체와 정체를 겪었다. 두 나라의 격차는 여러 부문에서 상당히 좁혀진 것처럼 보인다. 일본의 안전신화도 이번 대재앙으로 크게 훼손됐다. 국민들의 침착하고 질서 있는 태도에 전세계가 놀랐지만, 일본 정부의 재난 대응능력과 시스템에는 의문을 품게 된 이들이 적지 않다.

이번 재앙은 우리의 상상력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2001년 9ㆍ11테러를 겪은 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겠다는 얘기들을 했는데, 이제 한동안 지진 쓰나미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만들어지기 어려울 것 같다. 어떤 영화적 상상력이 이 같은 복합 재난의 리얼리티를 뛰어넘을 수 있겠는가.

상상을 초월한 재난 앞에서 정부의 대응능력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늑장 보고를 하고, 정보를 숨겼다고 정부를 비난할 수는 있지만, 애초에 이런 규모의 재앙을 상상하지 못한 마당에 그렇지 않았던들 무슨 뾰족한 대응수단이 있었을까 싶다.

그러니 일본의 재난사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재난 대비에서 더 이상 기존의 지식과 상상력에만 의존하지 말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전문가의 전문적 견해를 존중해야겠지만,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최근 겪어온 구제역 재앙도 따지고 보면 전문가들이 만든 대응 매뉴얼에만 매달린 방역당국의 상상력 부재의 결과일 수 있다. 이제 있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재난대비 태세를 근본부터 다시 점검해야 한다. 안전의식과 방재시스템이 으뜸이라는 일본이 저런 상황인데, 우리에게 그 절반 규모의 재난이라도 닥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일본은 결국 스스로의 노력으로 위기를 극복하게 될 것이다. 인간은 재난에 취약하지만 재난이 닥쳤을 때 인간의 위대함이 드러나기도 한다. 정년을 6개월 앞두고 후쿠시마 원전의 안정화 작업에 뛰어든 59세 남성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다. 국제사회의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이럴 때 역사적 앙금이 가시지 않은 이웃의 도움은 다른 누구의 도움보다도 값지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김상철 정책사회부장 s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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