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발리 지음ㆍ박규태 옮김/ 경당 발행ㆍ576쪽ㆍ2만8,000원
오류부터 짚어 보자. “신석기시대 일본인들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먼저 토기를 만든 장본인”(20쪽) “(기마술 갑옷 등이) 대륙의 침입자들에 의해 일본에 전해진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 스스로 수입한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41쪽) “(호류지 금당벽화 보살도가) 당나라풍 회화의 가장 뛰어난 사례”(66쪽)….
일본 문화의 독자성을 절대화하는 관점, 한국인 입장에선 특히 고대 한일 관계에 대한 무지(혹은 무시)가 거슬리는 책이다. 일본 중세사를 전공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책으로 일본에 대한 예찬을 숨기지 못한다. 불편하다. 하지만 그러한 태도가 서양인들이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상식의 바탕을 이루고 있음 또한 사실이다.
1973년 초판 발간 후 증보를 거듭하며 영어권 여러 나라에서 일본 문화사의 기본 교재로 사용됐다. 일본의 신석기시대인 조몬(繩文)시대부터 현재까지를 통시적으로 개괄해 보여 준다. 이 책의 저본인 4판에서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 세계까지 다뤄진다. 정치사회적 사건과 인물뿐 아니라 문학 음악 건축 정원술 다도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학자가 쓴 책이고 객관적 서술방식을 취했다. 그렇지만 일본인의 심리를 깊숙이 파고들어 일본의 내밀한 면모를 비추는 서술의 비중이 크다. ‘사비(寂ㆍ쓸쓸함)’ ‘미야비(雅ㆍ세련된 궁정미)’ 등 일본 문화의 바닥에 깔린 정서를 미학적 관점에서 접근한 대목들이다. 요컨대 역사서와 비평서의 경계 위에 있는 책이다.
“‘오래된 연못/개구리 뛰어드는/물소리 퐁당’. 이 하이쿠에서 바쇼는 영원한 것과 순간적이 것, 덧없는 것의 조우를 들여다보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는다. 바쇼는 그저 두 개의 이미지를 단순하게 병치할 뿐이며… 이런 태도는 선불교와 하이쿠 정신의 극적인 만남을 보여 준다.”(314쪽)
한국에서 발행되는 일본 문화에 대한 책들이 대개 비판적인 탓인지 호감이 가득한 이 책이 새롭다. 일본에 대한 입체적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될 책이다. 아마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읽어 낼 수도 있을 듯. 서양인들은 도대체 왜 저토록 철 지난 무사도에 열광해 ‘라스트 사무라이’ 같은 영화를 계속 만들어 내는 걸까?
한국인은 이웃 일본을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