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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살아남은 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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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살아남은 자의 책임

입력
2011.03.18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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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당혹이었다. 검은 선 같은 것이 쑥쑥 전진하는 화면을 보며, 저게 뭔가 싶었다. 그것이 높이 10m가 넘는 쓰나미이며 그 거대한 물의 벽이 도시 전체를 집어삼키는 장면이란 걸 깨닫자, 무서웠다. 자연의 포효 앞에 공들여 일군 모든 것이 폐허로 변하는 게 무섭고, 자연을 ‘관리’하고 ‘정복’하려는 인간의 오만을 꺾기 위해 얼마나 더 끔찍한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생각만 해도 겁이 났다.

슬픔은 그 뒤에 찾아왔다. 단지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나보다 먼저 고통을 겪는 이들에 대한 연민이 눈물로 흘러내렸다. 내가 살고 그들이 죽은 데는 논리나 당위 따윈 없음을 알기에, 이 사태 앞에서 우리는 똑같이 무력한 인간이기에, 그들의 눈물과 절망은 또한 내 눈물이요 절망이기도 했다.

그리고 슬픔은 다시 분노로 바뀌었다. 신의 경고니 천벌이니 떠드는 부박한 입들, 자신의 행운을 떠벌리기 위해 타인을 모욕하는 천박한 영혼들 때문이 아니었다. 책장을 갉아먹는 좀처럼 그런 자들은 늘 있어왔으니, 보들레르의 말처럼 “50년 뒤에는 아무 의미도 아닐 이름들을 언급하는 것은 부끄러운”일이지 분노할 일은 아니었다.

분노를 부르는 건 50년 뒤에도 의미를 가질 이름들, 세계 최고의 안전국이

라는 신화 뒤에서 국민을 기만하고 정보를 은폐하고 관리를 소홀히 한 일본정부와 전력회사, 국제원자력기구 같은 이름들이었다. 불과 24년 전 체르노빌 원전 사고로 세계가 끔찍한 후과를 치렀음에도, 경제논리를 내세워 안전 보강을 외면하고 기업과 유착해 위험을 방치한 저들의 탐욕 때문에 힘 없는 현장 직원들이 목숨을 걸고 책임을 진다고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었다.

그러나 체르노빌을 떠올리자 회의가 들었다. 체르노빌은 안전한 원전이란 신화이며, 그 신화를 위해 권력이 방사능 피해를 숨기고 피해자들을 강제 이주시키는 거짓과 폭력도 불사했음을 보여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여전히 안전 신화를 믿고 감시와 견제를 소홀히 한 시민들에게 과연 분노할 자격이 있을까. 자원 부족을 뻔히 알면서도 일상의 안락을 양보할 맘은 전혀 없던 우리가 이제 와서 억울하다 할 수 있을까.

체르노빌의 핵 구름이 지구에 죽음의 재를 뿌리는 동안에도 우리는 핵 발전소를 승인했다. 풍요의 대가를 따지는 대신, 인간이 모든 매뉴얼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쪽을 택했다. 그쪽이 몸도 마음도 편했으므로. 그러나 수만, 수십만, 어쩌면 수백만의 목숨이 위태로운 지금, 우리는 우리의 잘못을 깨닫는다. 을 쓴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생각대로 살고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죄”를 지었음을 깨닫는다.

최고의 기술과 안전을 자랑하던 나라가 순식간에 대재앙의 근원이 되었음에도 한국 정부는 원전 확대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 겪는 모든 위험을 불사할 만큼 그것이 최선인지 돌아봐야 할 이때, 한 치 망설임도 없이 안전을 장담하는 그 확신이 나는 두렵다. 전쟁의 불씨가 살아있는 땅에 21기의 원자로가 있다니, 삶이란 원래 이렇듯 위태로운지 아니면 우리가 어리석어 이토록 위태로워졌는지, 막막할 뿐이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에겐 절망할 자유가 없다. 산 자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고, 그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할 책임이 있다. 순응의 매뉴얼이 아니라 비판의 눈초리로 재난을 막을 책임, 아이들에게 미래를 약속할 책임, 그를 위해 싸울 책임이 살아남은 우리에게 있다.

김이경 소설가ㆍ독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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