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심야 온라인 게임을 제한하는 '셧다운제' 논란이 뜨겁다.
셧다운제는 게임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청소년들의 심야 인터넷 게임을 차단하는 법안으로, 관련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가 뚜렷한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당초, 규제 대상 연령을 만 14세 미만으로 하려던 문화체육관광부와 만 19세 미만을 고수했던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말 만 16세 미만의 절충안에 합의하면서 셧다운제는 급물살을 타는 듯 했다.
하지만 최근 세부 법안 마련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는 규제 대상을 온라인 컴퓨터(PC) 게임에 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여성가족부는 스마트폰 등 휴대폰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또 다시 맞서고 있다. 갈등의 핵심인 규제 범위가 연령대에서 모바일 기기로 넘어간 양상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산업 활성화를 위해 PC 게임만 규제해도 충분하다는 입장이지만, 여성가족부는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해선 PC는 물론 스마트폰까지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온라인 게임 및 포털 업계를 우군으로 두고 있고, 여성가족부는 학부모 단체들의 지원 사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반영하듯, 국회 법사위 제2소위원회도 지난 9일 셧다운제 관련 조항이 담긴 청소년보호법 개정안과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 논의를 전면 보류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키로 했다. 유예기간을 얻었지만, 양 측의 입장 차이가 큰 만큼 합의점 도출은 쉽지 않아 보인다. 한국청소년단체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청소년의 절반 가량은 온라인 게임을 위해 인터넷에 접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셧다운제 시행과 관련해 규제 범위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양 측의 논리를 들어봤다.
허재경 기자 ricky@hk.co.kr
● 셧다운제 도입 찬성
온라인게임만 온갖 궤변과 10조원대의 산업규모라는 영향력을 동원해 청소년들의 생명권을 위협하며 특권을 누리도록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성장기에 있는 아동 청소년이 늦은 밤에는 잠을 자야 한다는데 반대하는 사회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 부모들은 밤늦게 자려는 자녀 때문에 우려하고 있다. 그럼에도 청소년의 늦은 밤 시간 수면 방해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게임 과몰입을 막기 위해 마련된 셧다운제도가 2005년 입법 발의된 이후 6년째 표류하고 있다. 우리사회에 게임 산업 자본의 탐욕적인 영향력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수면이 건강관리에 매우 중요함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수면은 신체적 건강 뿐 아니라 정신건강과도 밀접하다.
일례로 시드니 대학교 연구팀은 17~24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12~18개월 동안 연구한 결과 잠자는 시간이 1시간 줄어들 때마다 정신적인 장애 수준이 5%씩 증가한다고 밝혔다. 또 평균적으로 잠을 짧게 자는 청소년은 충분히 자는 청소년에 비해 심리적 장애 증상을 보일 확률이 14%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수면으로 유발되는 간접적인 건강문제도 적지 않다. 국립수면재단 연구에 따르면 18세 청소년 240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 평일 밤에 8시간 미만으로 자는 청소년은 그렇지 않은 청소년에 비해 지방은 2%, 탄수화물은 3%를 더 많이 섭취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들이 밤새워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게임사업자들의 탐욕적인 입장은 그렇다 해도, 청소년들이 밤새워 오락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다. 컴퓨터(PC) 방에서 게임을 하다가 죽어가는 사람들이 계속 발생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수면 시간을 보장해주는 것은 모든 권리에 우선하는 생명권의 문제이다.
오락을 할 권리, 여가시간을 보낼 권리 등이 생명권보다 우선하는 권리일 수 없다. 헌법에 보장된 행복추구권은 오락할 권리를 보장하기 이전에 적정한 시간 수면을 취함으로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는 생명권 보장에 우선 적용돼야 할 것이다.
한국정보문화진흥원이 수행한 연구에서 인터넷 이용과 수면과의 관계조사를 보면, 27.1%(약 250만명)가 잠이 부족하다고 응답하고 있다. 게임사업자들과 문화관광체육부는 언제까지 청소년들의 수면부족은 인터넷과 관계가 없다고 할 것인가?
통계청 분석에 따르면 청소년(만10세~24세)의 인터넷 주 이용 시간대는 만 13~만15세의 6.4% 및 만 16~만19세의 19.5%가 23시 이후 6시 사이에 인터넷 사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인터넷 접속과 함께 게임 이용이 용이한 스마트폰을 셧다운제에서 제외한다면 청소년들의 수면부족 현상은 더더욱 심화될 것이다.
셧다운제를 반대하는 사업자 입장에는 실효성이 없다는 것도 있다. 이는 청소년 흡연율이 20~30%라서, 청소년 음주율이 60%~70%라고 해서 청소년 음주와 흡연을 금지하는 것은 실효성이 없으니 청소년보호법을 폐지하자는 것과 비슷한 주장이다. 정말로 제도를 시행하고 싶은데 실효성이 걱정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걱정하며 반대만 하지 말고 업계와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실효성을 높여가도록 노력할 것을 제안한다.
부모들에게나 청소년들에게 그들의 미래에 사활적으로 중요한 공부할 권리도 수면권 보다 우선할 수 없기에 이를 규제하고 있다. 심야시간 학원교습소 영업규제가 그것이다. PC방이나 오락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밤 10시 이후 청소년출입시간을 규제하고 있다. 오직 온라인게임만 온갖 궤변과 10조원대의 산업규모라는 영향력을 동원해 청소년들의 생명권을 위협하며 특권을 누리도록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학부모의 대부분이 찬성하고 KBS조사에서 77%가 찬성하며, 한게임에서 실시한 게임 이용자 대상 조사에서도 58%가 셧다운제도를 찬성하고 있다. 문화관광체육부와 국회의원들이 이를 반대하는 궤변에 휘둘리지 말고 조속히 셧다운 규제법안을 통과시켜 시행할 것을 학부모들은 간곡히 바라고 있다.
권장희 놀이미디어교육센터 소장
● 셧다운제 도입 반대
강제적 셧다운제는 국가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것으로 가족의 결정권과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여성가족부와 일부 학부모 단체가 도입을 주장하는 소위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라는 것은 언뜻 그럴듯해 보인다. 청소년들이 게임 때문에 잠도 안 자고, 학업도 등한시하면서 폭력적으로 변해간다는 이유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과연 모든 게임을 문 닫게 하면 청소년들이 부모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
일찍이 미국의 저명한 비평가인 멩켄이 설파했듯이 간단하고 멋져 보이는 해결책은 반드시 잘못된 길로 인도하기 마련이다.
가장 최근에 시행된 여론조사(한국입법학회, 2011년3월)에 따르면 우리의 청소년들 중 절대 다수(94.4%)는 '강제적 게임 셧다운제'가 시행된다 해도 다른 대안을 찾거나 규제를 회피할 것이기 때문에 효과가 전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실제 포털 사이트 검색을 통해 무수히 많은 외국 게임을 접할 수 있기 상황에서 국내법으로 전 세계의 모든 게임을 막는다는 발상 자체가 넌센스다.
오히려 정부보다 학부모와 청소년의 생각이 더 현명한 것 같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우리의 학부모와 청소년들은 가정에 대한 교육 및 양육권을 법이나 정부에 맡기는 것 보다 가정 스스로 결정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봤다. 즉, 여러 가지 방법들 중에 가정 내에서 직접 게임이용 시간을 관리하고 이를 게임업체에서 지원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학부모의 43.5%와 청소년 39.8%)하는 반면, 법으로 강제하자는 주장은 10%대로 가장 낮았다.
아울러 한국입법학회가 분석한 셧다운제의 실효성에 관한 경제학적 분석에 따르면 비용 대비 편익 값이 1보다 낮아(0.41~0.88), 오히려 국민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특히 스마트폰까지 셧다운제를 적용시킨다면 블루오션 분야인 국내 모바일 산업 위축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렇다고 대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학부모와 청소년은 가정에서 자연스럽게 게임이 통제되기를 바라고 있다. 따라서 가정의 자율기제가 움직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최적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여기서 게임 기업의 역할은 청소년에게 게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면서 그 가정의 결정에 따라 이용시간을 조절해 주는 것이다. 소위 말하는 '선택적 셧다운제'라는 게 그것이다.
정부가 청소년 보호라는 미명 아래, 법을 동원해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에 침투하는 것은 위헌적 요소도 안고 있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국가가 부모의 역할을 대신하겠다는 것으로 가족의 결정권과 프라이버시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가정에 직접 침투하는 게 아니라 가정의 자율기제가 움직이도록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런 시각에서 접근하는 정부 정책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
정부정책의 방향을 유도하는 언론에도 책임이 있다. 최근 언론에 보도되는 게임과 관련된 사건사고 보도를 보면 다소 과장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게임을 즐기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든 게임이 연루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직접적인 책임과 인과관계를 오로지 게임에서 찾고 있는 것이다.
여론에 편승한 정부 정책도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가정의 복지대책을 강구해야 할 여성가족부가 기업에 대해 규제하겠다고 나서면서 부처 간 밥그릇 싸움을 시작했고, 16세 기준으로 권한을 나눠 갖는 세상에 유례없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국가권력의 가정 침투라는 독재정권 시대에서나 있을 법한 기막힌 제도의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이다. '강제적 셧다운제'는 단기간에 우리의 자녀가 게임 시간을 줄이게 할 지 모르지만 부모와 자녀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박탈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 즉 게임 셧다운이 역설적으로 가정의 셧다운이란 극한 상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무의미한 셧다운제 논의는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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