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지쳐있어요.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이라 면역력도 떨어져 있고. 이대로라면 금방 병이 퍼질거예요.”
도호쿠(東北) 지방 이재민들의 피난생활이 길어지면서 2차재앙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16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전기도 물도 공급되지 않으며 하루에 한 공기 반 정도의 식량 배급만 나오는 등 열악한 대피소도 있었다. 음식이나 물뿐만 아니라 보온연료와 약도 부족한 상황. 이런 환경에서 감기 등 전염병까지 유행하고 있어 특히 면역력이 약한 아이들과 노인들이 위험에 처했다. 재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 등 보이지 않는 피해도 확산되고 있다.
대피소에 집단설사 감기 등 유행
300여명이 대피해 있는 이와테(岩手)현 가마이시(釜石)시의 한 학교에는 4학년 남학생 8명이 집단으로 발열 등 독감증상을 보여 격리됐다고 17일 요미우리(讀賣) 신문이 전했다. 인근 오쓰치(大槌) 피난처에서도 8명의 초중생과 고령자가 설사와 구토증세를 호소하는 등 환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들은 수도가 끊긴 3일간 오쓰치천의 물을 그냥 마셔 탈이 난 것으로, 오카다 다다시(73)씨는 “마실 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의료지원이 못 미치는 곳도 많아 피난민들은 병이 나도 그냥 쉬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정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많은 가운데 일본 적십자 등 민간단체들이 나서고 있다. 적십자는 15일 가마이시 시내 중학교 체육관에 의료 텐트를 설치하고 7명의 의료진을 파견해 환자를 보는 등 곳곳에 손길을 뻗고 있다. 쓰나미를 피하다 허리에 다쳐 고생하고 있다는 70대 한 노인은 “지난 밤에는 이곳에서 탄 약을 먹고 좀 편하게 잘 수 있었다”고 고마워 했다.
한편 17일 후쿠시마(福島)현 이와키시와 인근지역에서는 인공투석을 받아야 하는 환자 800명이 도쿄로 향하는 등 응급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먼 길을 이동했다.
스트레스ㆍ충격으로 재해관련사 잇따라
재해의 충격이나 피난생활 스트레스로 인한 재해관련사 우려도 커지고 있다. NHK는 17일 대피소로 향하는 도중이나 피난 후 사망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며 최근 숨진 23명이 재해관련사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14일 후쿠시마현 원자력 발전소 인근에 위치한 의료기관이나 복지시설에 머물다 이와키시의 대피소로 향한 노인 128명 중 14명이 사망했는데, 지진 후 충격이나 스트레스로 의한 재해관련사로 인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2명은 이동 중에, 12명은 대피소에 도착해 숨졌다. 당시 체육관에 임시로 마련된 대피소에는 의사 1명을 포함해 의료진 4명이 있었지만 의약품이 거의 없었고, 피해자들은 다다미 위에 담요를 깔고 히터 등을 두고 자고 있었으나 체력이 고갈돼 추위를 못 견딘 것으로 보인다.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의 한 중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에서 생활하다 16일 사망한 80대 여성도 같은 경우로, 체력이 급격히 떨어져 병원으로 후송됐으나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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