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년 전 지구촌에 큰 충격을 줬던 아이티 지진과 멕시코ㆍ칠레 지진, 그리고 뉴질랜드 지진에 이어 규모 9.0의 대지진과 쓰나미가 이웃 일본을 덮쳤다. 일본은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만큼 방재대책도 체계적으로 잘 갖춰진 나라이지만 이번 지진은 그 강도와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가장 가까운 이웃인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 앞서 119국제구조대를 급파했고, 기업과 민간단체 등의 구호활동도 활발하다. 이 같은 인도적 지원 노력과 함께 일본의 체계적인 재난 대응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소중히 간직해야 한다. 일본 국민과 언론의 놀랍도록 침착한 대응을 본받을 일이지만, 무엇보다 지진 재해의 실체를 정확히 인식하고 철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는 지진 재해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1978년 계기 관측을 실시한 이후 지금까지 규모 6.0 이상 지진이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진 발생 횟수로 보면 결코 안심할 수 없다. 최근 33년 간 총 906회, 연평균 27회의 지진이 관측됐다. 신체로 느낄 수 있는 규모 4.0 이상의 유감지진도 42회나 일어났다. 2010년 2월 제주 해역에서 발생한 연속 지진과 경기도 시흥지역의 지진 등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가 절대적인 지진 안전지대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소방방재청은 일본 고베 지진을 계기로 1995년 지진방재 종합대책을 처음 마련한 이래 지진재해 대책법 제정과 대응시스템 구축을 통해 초기대응 및 의사결정 지원 체계를 마련해놓고 있다. 특히 2009년 제3차 지진방재종합대책에서는 국가 내진(耐震) 성능 목표를 설정해 기존 시설물의 내진보강, 가속도 계측자료 통합관리 시스템, 지진해일 위험지구 정비 및 대응체계 구축 등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중국과 이탈리아, 그리고 최근 일본의 대형 지진피해 사례를 살펴볼 때 정부의 대응시스템 구축 노력만으로 지진 피해를 줄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가 최선의 노력을 통해 국가적 재해 대응 역량을 갖추는 것은 필요하지만, 지진재해의 특성상 피해 규모가 크고 동시 다발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정부 시스템만으로 감당하기엔 역부족인 게 현실이다.
일본에서도 지진 피해자가 소방차나 구급차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개인과 지역공동체가 초기 소화와 인명구조, 응급구호, 비상식량 등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웃나라에서 발생한 대지진과 그로 인한 참혹한 피해를 보고 막연한 불안감만 가질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지진재해가 닥쳤을 때 이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미리 대비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할 것이다.
자신과 가족, 이웃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한 노력은 종래의 정부주도형을 벗어나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방식, 일방적인 정보전달에서 쌍방향적인 정보전달 방식, 서류에서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작동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우리가 고도성장을 위해 소홀히 넘기거나 부차적으로 여겼던 안전에 대한 패러다임도 근본적으로 재검토돼야 한다.
경제적 부를 일부 희생하고 발전속도를 줄이더라도, 언제 닥칠지 모르는 대형 재난의 위험을 사전에 파악하고 봉쇄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이 더 경제적인 동시에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유일한 길일 지 모른다.
정상만 국립방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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