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초기만 해도 일본 경제의 복원력에 대한 시장의 믿음은 확고했다. 오히려 지진 복구 과정을 통해 일본경제가 구조조정에 나선다면, 펀더멘털은 더 강해질 것이란 낙관적 시각이 우세했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일본경제는 사면초가다. 지진과 쓰나미에서 원전과 방사능으로 불이 옮겨 붙으면서 산업 피해는 눈덩이처럼 확대되고 있고, 멈춰 선 공장들이 언제 재가동될 수 있을지 기약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붕괴된 경제를 다시 살리려면 결국 빚을 내야 하는데, 유럽재정위기의 진원지인 그리스나 아일랜드보다도 취약한 일본이 과연 추가적인 재정부담을 감내할 수 있을지, 국제금융시장의 불신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이 와중에 감당키 힘든 엔고(高)까지 겹치면서 일본경제는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몰리는 형국이다.
예측기관들은 이번 지진과 원전 폭발의 피해 규모가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을 크게 능가할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투자은행 크레디트스위스는 “한신대지진 당시 국내총생산(GDP)의 2%인 1,150억달러 가량의 복구비용이 투입됐지만 이번에는 1,8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추산했고, 미쓰비시 UFJ증권은 복구비용이 GDP(약 5조달러)의 5%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당장은 국채 발행 등 빚을 내서 재건에 나선다 쳐도, 향후 악화된 재정이 부메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이미 GDP의 200%에 달하는 상황. 지금은 신용평가회사들이 “대지진으로 인한 일본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없다”고 밝히고 있지만, 국가채무 문제로 이어진다면 등급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미 지난 1월 S&P는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한 단계 강등시켰고, 무디스도 지난달 등급전망을 ‘부정적’으로 바꾼 상태다.
멈춰 선 산업도 문제다. 도로와 전력 등 인프라가 붕괴되면서 자동차, 정유, 철강, 전자 등 핵심산업의 가동이 중단된 상황. 정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전력 공급이 오래 중단되면서 주력산업의 공장들이 정상 가동되기에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게다가 지금은 중동 사태와 유럽재정 문제 등까지 겹쳐있는 등 대외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이 부담”이라고 말했다.
방사능 노출 우려에 따른 산업 손실도 클 것으로 우려된다. 당장 미국 백악관이 일본에서 수입하는 식품류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상태. 사태가 확산될 경우 일본 농축수산물은 물론 가공식품 등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 여행 등 관광산업의 타격도 불가피한 것은 물론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엔화 가치까지 급등하면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에 치명타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일본 정부는 지금도 경제회복에 자신감을 표시하고 있다. 요사노 가오루(與謝野馨) 일본 경제재정상은 17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회견에서 “지진과 쓰나미 피해에도 불구하고 복구투자를 감안하면 이번 사태의 성장률 잠식은 0.1~0.2%포인트에 그칠 것”이라며 “경제재건에 충분히 지출하면서 재정균형도 최대한 유지하는 투 트랙(two track)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고, 아무리 좋게 봐도 조기회복은 어렵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노무라증권조차 “한신대지진 때는 ‘V자’회복을 했지만, 이번에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전망을 내놓은 상태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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