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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도호쿠 대지진/ 경제는 멈춰 섰는데 '마지노선 80엔' 붕괴…"엔화가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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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도호쿠 대지진/ 경제는 멈춰 섰는데 '마지노선 80엔' 붕괴…"엔화가 미쳤다"

입력
2011.03.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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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 폭발과 방사능 유출. 나라가 잿더미가 됐고 경제는 사실상 멈춰 섰는데도 일본 엔화가치는 연일 급등하고 있다. 슈퍼엔고다. 그리고 마침내 전후(戰後) 최고가 기록마저 갈아치웠다.

일본정부나 기업으로선 ‘약한 엔화’가 절실한 상황. 결국 일본 중앙은행은 나서 엔화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해 매일 수조엔씩, 지금까지 무려 32조엔의 돈을 퍼부었지만, 고삐 풀린 통화가치를 잡는 데는 역부족이다. 일각에선 ‘재난의 역설(재난상황에서 통화가치가 급등하는 상황)’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엔화가 미쳤다”는 해석이 더 정확해 보인다.

엔고(高)는 곧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엔화에 대한 수요가 넘쳐난다는 의미다. 여기엔 몇 가지 요인이 맞물려 있다. 우선 제로금리인 엔화를 빌려 해외로 나가 투자해놓았던 180조엔에 달하는 자금(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 가능성. 지진 등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의 기업 및 가계가 복구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투자자금을 국내로 들여올 거라는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 특히 지진 피해로 막대한 보상금을 마련해야 하는 일본 보험업체들이 해외 투자금을 대거 회수할 거란 전망이 불붙은 엔고에 기름을 붓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 현상도 엔화 강세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엔화는 달러의 뒤를 잇는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한신 대지진(95년), 아시아 금융위기(98년), 글로벌 금융위기(2008년) 등 위기 때마다 엔화가 늘 강세를 보였던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위기의 진원지가 일본이지만, 위기 상황에서는 여전히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 더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양적완화(달러약세)정책의 지속 방침을 천명했기 때문에, 엔화는 더 강해지고 있다.

엔화의 방향이 정해지니까 투기세력도 가세하고 있다. 실제 16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지던 80엔대가 붕괴된 때는 상대적으로 거래물량이 적은 오후 4시 이후. 80엔 전후에서 움직이던 엔ㆍ달러 환율은 순식간에 76엔대까지 급락했다. 시중은행 한 딜러는 “도쿄 등 아시아 외환시장 개장을 앞두고 국제 환투기 세력들이 대규모 작전에 나섰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슈퍼 엔고 상황이 지속된다면, 일본 경제는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에도 충격이 전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일본계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된 호주(600억달러) 브라질(340억달러) 등은 엔 캐리 트레이드자금이 회수되는 과정에서 적잖은 타격이 우려된다.

물론 지금의 슈퍼엔고는 분명 펀더멘털에서 이탈한 비정상적 흐름이고, 그런 만큼 계속 이렇게 가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주요 선진국들도 공조개입 등을 통해 어떻게든 과잉엔고를 막을 것이란 관측이다. 정호성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수출 악화를 우려해야 하는 일본 정부가 환율이 80엔대 아래에서 움직이는 걸 용인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더구나 이번 사태로 세계 경제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위상이 하락하면서 안전자산으로서의 엔화의 저력도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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