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 대지진이 전 세계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자동차와 정보기술(IT) 업종뿐 아니라 에너지 산업, 농식품업, 어업까지 일본발(發) 산업 쓰나미에 휩쓸리고 있다. 비용절감 등을 위해 국가간 분업과 재고 최소화를 추구했던 기업들은 글로벌 공급망이 손상되며 생산 시스템 세계화의 부메랑에 직면하고 있다.
가장 큰 후폭풍이 불고 있는 곳은 IT 업종이다. 일본은 휴대폰과 TV 등 최첨단 IT 기기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와 부품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나라다. 먹이사실 구조의 맨 밑바닥을 차지하고 있어 연쇄적인 생산 차질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기판용 수지가 대표적인 예다. 기판용 수지는 반도체 칩을 연결하는 기판을 만들 때 사용되는 소재. 그런데 전 세계 기판용 수지의 50%를 생산하는 미쓰비시가스화학이 이번 지진으로 생산을 못하고 있다. 이 곳의 기판용 수지를 가져다 인쇄회로기판을 만드는 대만의 킨서스나 유니마이크론 같은 회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 회사의 인쇄회로기판은 아이폰을 생산하는 폭스콘에 납품되고 있다. 한 달 정도의 재고량을 소진할 때까지 미쓰비시가스화학의 생산이 재개되지 않을 경우 전 세계 스마트폰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다른 회사에서 기판용 수지를 가져올 수도 있지만 디자인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도시바와 르네사스 같은 반도체 회사의 생산도 중단되며 이미 낸드플래시 메모리 가격은 10% 이상 급등했다. 일본은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전 세계 공급의 60%도 담당하고 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이다. 도요타는 이미 일본 국내뿐 아니라 13개 북미 공장의 생산도 삐걱대고 있다. 프리우스, 캠리,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차량에 들어가는 배터리를 생산하던 미야기(宮城)현 공장이 쓰나미 피해를 입은 것. 일본 자동차 업체뿐 아니라 포드의 퓨전, 이스케이프, MKZ의 하이브리드 모델도 배터리 부품을 일본 업체에 의존하고 있어 생산에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자동차 업계는 공장 내 재고를 최소화해, 비용을 줄이는 도요타의 적시생산시스템인 '저스트인타임'(JIT) 방식을 그대로 본 받은 곳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시스템은 평상시엔 효율적일 지 몰라도 비상 상황에선 부품 하나만 없어도 전체 생산 시스템을 돌리지 못하는 치명적 단점을 갖고 있다.
에너지 산업도 불똥을 맞았다. 중국이 신규 원전 건설 승인을 보류키로 하고, 독일도 1980년 이전 건설된 원전 7기의 가동을 중단키로 했다는 소식에 국제 우라늄 가격은 25%나 폭락했다. 반면 대체 에너지라 할 수 있는 천연가스 가격은 13.4%, 석탄 가격은 10.8% 상승했다. 원전 선진국인 프랑스는 물론 신흥 원전 강국을 꿈 꾸던 우리나라의 원전 관련 업체들도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농업도 예외는 아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일본산 수입 식품류의 안전성 검사 강화를 권고함에 따라 일본산 식품의 수출엔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에선 소금이 품귀 현상을 보이며 지역에 따라선 가격이 최고 30배까지 뛰고 있다. 바다가 방사성 물질에 오염돼 소금 생산이 줄 것으로 보이는 데다가 소금을 먹으면 피폭도 줄일 수 있는 것으로 전해지며 소금 사재기 현상도 확산되고 있다.
밥상에도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세계 3대 어장 중 하나로 꼽히는 일본 동북부 해안이 대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조업 중단으로 어획량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일근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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