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만화가 박재동 화백은 국가인권위원회 지원으로 인권 애니메이션 를 제작했다. 이 영화 속 고3 학생들은 모두 동물의 모습으로 ‘대학 가서 사람 되자’는 급훈 아래 입시만 준비한다. 대학을 가야만 사람의 모습을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릴라 모습을 한 원철은 곤충을 채집하고 탐구하는 것이 재미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건 나중에 해도 돼. 공부 열심히 해서 먼저 사람이 되어야지.” 라며 훈계한다. 그러던 어느 날 원철은 자신이 기르던 풍뎅이를 따라 학교를 벗어난 자연 속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을 원하는지를 깨닫고 자신감을 회복하여 사람의 모습으로 학교로 온다.
대학 들어와 진로 고민
그러나 선생님은 원철의 ‘나 됨’을 거부하고, 대학을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누구 마음대로 사람이 되었느냐”며 친구들 앞에서 체벌한다. 대학을 못 나와 사람이 되지 못해 동창회도 못 간다고 울부짖는 아버지의 훈계를 비난할 수 없는 현실과 학력 차별의 이면을 폭로한다. 사랑과 교육이란 명분으로 길들여진 학생들은 대학을 가야만 한다는 중압감에 자신의 적성이나 꿈은 물론 문과나 이과를 불문하고 성적에 맞춰 부모님 권유로 학과를 선택한다.
대학교의 학과 선택은 사회에서 어떤 직업에 종사할 지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흥미와 적성, 졸업 후 진출분야, 발전 가능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더구나 학생을 모집하는 단위는 학과나 계열이고, 졸업 후 취업 분야도 학과별로 달라진다. 당장의 합격에만 매달리지 말고 졸업 후에도 만족할 수 있는 학과, 적성에 맞는 학과를 찾을 때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자신의 직업과 인생을 고민하는 학생들이 많다. 열심히 공부하고 입학해서도 방황하는 학생들을 보는 마음은 참으로 안타깝다. 전국의 11학번 새내기 300명을 조사한 결과, 54%가 대학생활에서 가장 걱정되는 것이 ‘취업 준비’라고 응답하면서도, 56%는 희망 직업까지 고려하지 못하고 점수에 맞는 학과를 선택했고, 10%는 부모님이 원하는 학과를 선택했다. 한편 새내기의 72%가 생각하는 성공적인 취업은 ‘흥미와 적성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다.
매년 3월이면 세미나 지도라는 수업을 통해 7명의 신입생들과 한 학기 동안 주 1시간 만난다. 이 수업의 목표는 신입생 자신의 성격과 진로 적성을 알고, 함께 하는 학과의 또래를 알고, 학과의 전공과 취업 분야를 알고, 사회 변화와 자신의 특성에 맞는 세부 진로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도록 돕고 궁극적으로 자율성과 자아 존중감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과의 모든 교수가 각자 7명의 학생들과 자율적 수업방식으로 편안하게 만나 자유로운 생각을 나누고, 1학년 2학기부터 졸업까지는 수업 밖에서 지원한다. 일종의 사제 동행 멘토링이다. 3월 개강을 앞둔 신입생들은 과연 어떤 교수가 4년 이상 자신의 멘토가 될지, 어떤 친구들을 만나 마음을 열지가 중요한 관심사이다.
중ㆍ고부터 체계적 교육을
그런데 이 수업이 성인이 된 대학생들을 과잉 보호하는 것은 아닌지, 이들의 자립 본능을 제한하여 캥거루 제자로 만드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이러한 사후 처방보다는 문과와 이과를 갑자기 결정해야 하는 고등학교 입학 전부터 자신의 진로를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고민하여 흥미와 적성을 발견할 수 있는 진로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 진로 발달단계의 관점에서 초등학교는 진로의 인식 단계, 중고등학교는 진로의 탐색과 선택 단계, 대학교는 진로의 전문화 단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과 선택의 기준인 학생의 적성, 전공, 직업의 3개 꼭지점을 연결할 수 있는 진로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진로지도 전담교사가 양성돼야 하며, 이들은 학생 자신이 좋아하고 원하는 것과 특성에 기초하여 미래를 함께 설계하고 검증된 정보를 제공하는 진로 관련 사이트를 관리하고 부모에 대한 진로교육도 실시해야 한다.
이혜원 성공회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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