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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일본 대재난과 동아시아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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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성 칼럼] 일본 대재난과 동아시아공동체

입력
2011.03.1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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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동북지역을 강타한 대지진으로 한국과 일본 사이가 더 멀어졌다. 태평양판이 일본열도 밑으로 파고들면서 밀어 올려진 일본열도가 동쪽으로 평균 2.5㎙, 많게는 4㎙가량이나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한ㆍ일 국민 사이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가깝다. 한국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상 최악의 대재난을 당한 일본 국민을 진심으로 위로하며 도울 방법을 찾고 있다. 정부와 정당, 사회ㆍ종교 단체, 기업, 한류 스타가 앞장서고 성금모금에 동참하는 일반인들의 대열도 끝이 없다.

반일정서 녹인 대일 온정 물결

위안부 할머니들은 1992년부터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 대사관 앞에서 20년째 계속해오던 수요 집회를 지진과 쓰나미 희생자 추모 모임으로 대체했다. TV를 통해 참상을 목격한 한 위안부 할머니는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일본인들에게 힘내라고 격려하고 싶다"고 했다. 과거사 사과에 인색한 일본 비판에 앞장서왔던 단체들도 성금 모금에 나섰다. 범국민적 운동으로 번지고 있는 온정의 물결에 반일정서도 봄눈 녹듯 녹아버린 것 같다.

신석기 시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에 걸친 한일 교류 역사에서 일찍이 없던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신라가 경쟁적으로 문물을 전해 일본 고대국가의 성립에 큰 영향을 끼치는 등 한일 교류 협력관계의 역사는 깊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35년 일제강점기의 악연으로 양국 국민들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과거사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그 프레임이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대지진을 일방적인 관점으로 해석한 유명 종교인이나 과거의 시각으로 본 네티즌들이 뭇매를 맞는 것만 봐도 그렇다.

세계에서 일본을 우습게 여기는 유일한 국민이라는 한국인들이다. 하지만 일본 국민이 이번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을 고쳐 먹고 있다. 침착하고 의연하게 행동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인류의 정신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시민의식이라는 한 서구 언론의 평가는 과장이 아니다. 뛰어난 재난 대응시스템도 다시 보인다. 한마디로 일본의 재발견이다.

이제 한일 간의 진정한 화해와 협력, 나아가 중국 등을 포함한 동아시아 협력 공동체로 나아갈 계기가 마련됐다고 한다면 성급한 생각일까. 그동안 한ㆍ중ㆍ일은 긴밀한 경제협력과 인적ㆍ문화적 교류에도 불구하고 유럽연합(EU)과 같은 지역공동체 형성은 꿈꾸기 힘들었다. 역사와 문화의 공유 폭이 작고, 영토와 과거사 문제가 큰 걸림돌이었다. 그런 장벽을 넘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중국 정부도 가능한 한 모든 도움을 제공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민해방군의 의료부대 파견까지 제의했다. 사상 처음 인민해방군이 일본 땅에서 활동하게 될지도 모른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한ㆍ중ㆍ일 3국이 공동으로 서구제국주의 침탈에 맞서고 평화와 번영을 이루자는 구상이었다. 당시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라는 공동의 적이 3국 협력을 통한 평화를 제창한 배경이 됐다. 지금은 자연의 대재앙이 이웃한 3국의 공동 협력의 배경이다.

최악의 원전 사고도 3국의 공동 대처가 꼭 필요하다. 한국은 일본 못지 않게 원전 의존도가 높고 중국도 원전 건설을 급격하게 늘려나가는 중이다. 이번 사고로 원전 반대 여론이 높아지겠지만 당분간 다른 대안을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3국이 일본의 원전 사고 재앙을 극복하는 데 지혜와 힘을 모아 경험을 공유하고, 원전 안전도를 높여가는 데 공동운명체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재난 극복ㆍ협력 경험 활용해야

명동에 그 많던 일본인 관광객들을 찾아보기 어렵다. 명동 상인들이 울상이다. 여행사들도 큰 손해를 보고 있다. 기본재와 중간재, 최종 제품의 생산 수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 세 나라의 교역구조가 크게 흔들리고 있기도 하다. 일본에 닥친 대재앙은 이런 협력 틀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하고 있다. 대재난을 함께 극복하며 동아시아 공동체의 미래로 나아가는 꿈을 꿀 때다.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도 있는 민족주의나 민족감정은 격납용기에 안전하게 가두고.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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