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통 냉각시스템이 안정되지 않는다. 폭발, 화재, 격납용기 파손이 잇따랐다. 그러자 원전의 방사선 수치가 치솟았다. 그러니 작업자가 접근하기는 더 어려워졌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후쿠시마 제1원전이 이대로 통제불능이 돼 노심용융으로 핵연료가 누출되면 오염정화에만 수 년이 걸릴 재난이 된다.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하는 것은 방사선 때문에 작업자들의 현장 접근이 어렵기 때문. 16일 헬기로 4호기에 붕산수를 뿌리려 했던 계획을 포기한 것이 방사선 피폭 우려 때문이었다. 원자로 속의 연료봉이든, 수조 안에 저장중인 사용후 핵연료든 냉각수를 채워 식히지 않으면 고열로 녹아 내린다. 그러면 1,3호기의 외벽 붕괴처럼 증기압력으로 인한 폭발이 일어날 수 있고, 녹아 내린 핵연료가 차폐벽까지 녹이면 방사선이 대량 유출된다. 사용후 핵연료도 온도가 계속 오르면 다시 핵분열반응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위험성은 적지 않다. 결국 체르노빌원전사고처럼 대형 폭발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핵연료와 냉각수 등 고준위 방사성물질을 처리하느라 몇 달, 몇 년이 걸리는 상황이 된다.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는 급수장비 고장으로 냉각수를 식히지 못하면서 생긴 노심용융 사고다. 여기까지는 후쿠시마원전과 상황이 비슷하다. 다른 것은 스리마일섬원전에서는 뒤늦게나마 냉각펌프를 작동해 노심의 온도를 낮추기 시작했고, 녹아 내린 노심은 천만다행히 차폐벽이 뚫리기 직전까지만 갔다는 점이다. 그러나 후쿠시마원전은 현재 냉각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고 특히 압력수조와 격납용기가 파손된 2,3호기의 상황은 매우 불안하다.
스리마일섬원전에서는 두터운 차폐벽 덕에 핵연료 같은 고준위 방사성물질이 원자로 밖으로 유출되지 않았음에도 이후 10여년에 걸쳐 오염정화 작업이 필요했다. 손상된 원전 자체가 오염원이었던 것. 가장 위험한 핵연료를 안전하게 빼내는 일 등을 비롯해 원전 처리에 10여년동안 약 1조원이 들었다.
뜨거운 노심이 폭발해버린 체르노빌원전 사고 때는 핵연료와 흑연감속재 등에서 나오는 고준위 방사선을 차폐하느라 군용 헬기를 동원해 40톤의 붕소화합물, 2,400톤의 납, 1,800톤의 모래와 진흙 등을 화재현장에 뿌렸다. 붕소화합물은 연쇄 핵반응을 일으키는 중성자를 흡수하기 위한 것이었고, 납과 진흙 등은 방사선을 차폐하기 위해서였다. 열흘이나 이어진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는 돌로마이트도 600톤을 퍼부었다. 마지막으로 액체 질소를 주입해서야 불길이 잡혔다.
체르노빌원전은 격납용기가 아예 없었고 불에 잘 타는 흑연감속재를 썼다는 점에서 후쿠시마원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유출의 규모가 작다고 해서 방사선 오염으로 인한 위해가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핵연료가 녹아 모든 차폐벽을 뚫고 유출되면 원전 시설 안팎은 물론 토양, 지하수 등을 오염시켜 장기적인 영향을 미친다.
체르노빌원전 사고 때는 수년에 걸쳐 원전 주변 시설 표면을 닦고, 도로와 건물을 새로 짓고, 땅을 갈아엎어 매립하는 등의 방사성물질 제거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오염 지역에서 자란 식물들이 다시 방사선 오염물질을 배출했다. 화재진압과 오염정화에 썼던 작업도구도 방사성폐기물로서 역시 오염원이 됐다.
화재진압과 오염정화 작업을 벌였던 이들이 상당수 사망하고 피폭 당한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후쿠시마원전 사고가 최악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현장에서 원자로 또는 사용후 핵연료를 식혀야 하지만, 이 역시 희생이 따른다는 뜻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