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 직격타를 맞은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원자로 콘크리트외벽 폭발, 사용후 핵연료 저장시설 화재, 방사성 물질 유출, 연료봉 노출에 의한 노심용융 가능성 등 상황이 계속 악화하면서 불안정성이 증폭되고 있다. 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였던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폭발에 버금가는 단계로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에서 처음 문제가 발생한 12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국제원자력사고고장등급(INESㆍInternational Nuclear and radiological Event Scale) 중 4등급에 해당하는 사고라고 밝혔다. INES 4등급의 경우 소량의 방사성 물질 유출이 있는 '시설 내부 위험 사고'에 해당된다.
당시만 해도 지진 쓰나미 피해를 입은 태평양 연안 원자로 15기 중 11기에서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지만 IAEA 기준으로 볼 때 심각한 사고는 아니었다. 12일 오후 수소 폭발로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 외벽이 무너졌음에도 압력용기나 격납용기 등 원자로 안전 최후의 보루엔 문제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하지만 이후 3호기 외벽 폭발(14일), 2호기 격납용기 설비 파손 및 4호기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시설 화재, 5ㆍ6호기 사용후 핵연료 저장 시설 온도 상승(15일) 등 사고가 잇따랐다. 특히 4호기에서 누출된 방사선량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인 최대 400mSv(밀리시버트)에 이르고, 16일 3호기 격납용기에도 문제가 생기면서 상황은 급박하게 치달았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가 15일(현지시간) 이번 사고를 INES 6등급이라고 발표하고, 미국의 과학국제안전연구소(ISIS)가 "지금은 6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겠지만 7등급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도 이런 심각해진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5등급 '시설 외부 위험 사고'의 경우는 심각한 원자로 손상이나 방사성 물질 유출로 원전 시설 외부에 영향을 미치는 사고다. 원자로 노심이 용융되면서 대량의 방사능 가스가 발생한 79년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가 5등급이었다.
6등급 '심각한 사고'는 57년 러시아 키시팀 고준위핵폐기물 저장소 폭발 사고처럼 상당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돼 대책 마련이 필요할 경우 적용된다. 최고 등급인 7등급 '대형사고'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과 유사한 재앙을 뜻한다.
프랑스 원자력위는 "후쿠시마는 체르노빌과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의 중간 수준인 6등급으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쿠시마 원전은 격납용기 등 원자로 손상이 시작됐고(5등급), 방사성 물질도 대량 방출되는 상황(6등급)에 이르렀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주장하는 4등급 사고 범위는 넘어섰다는 것이다.
또 후쿠시마에서 연료봉 노출 시간이 길어져 노심용융이 이뤄지고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더 많이 유출되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6등급 이상, 최악의 경우 원자로 제어가 어려워져 폭발까지 간다면 7등급 재난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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