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측불허 고비의 연속…도쿄전력 "4호기 핵분열 가능성 있다"
대지진 이후 폭발, 화재사고가 잇따르며 방사성물질 대량 누출 가능성이 현실화한 일본 후쿠시마(福島) 원전이 갈수록 위험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2호기에 이어 3호기에서도 방사선 누출을 막는 최후 보루인 격납용기 손상이 우려되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의 폭발 위험이 있는 4호기에서는 또 화재가 발생했다. 방사선 수치가 급상승해 복구를 위한 접근 자체도 어렵다.
핵분열 가능성 제기된 4호기
4호기에서는 전날에 이어 이날 오전에도 사용후핵연료 저장소가 있는 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이 원자로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의 수소폭발로 건물 외벽에 8m 크기의 구멍까지 뚫린 상태다. 이를 통해 이미 상당량의 방사성물질이 누출됐을 가능성이 있는 데다 거듭된 화재로 방사선 오염 위험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날 도쿄전력 측이 4호기에서 핵분열 연쇄반응이 일어나고 있을 가능성을 완전 부인하지 않음으로써 자칫 극단적인 방사능 누출이 초래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된다. 핵분열이 진행중이라면 상정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일본 정부는 4호기 저장소에 냉각수 투입을 도쿄전력에 지시했지만 방사선 수치가 높아 접근을 못하고 있어 현장 파악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당초 헬기를 이용한 냉각수 투하를 검토했던 도쿄전력은 지붕 때문에 어렵다고 판단해 경찰에 물대포 동원을 요청했고 소방차 투입도 검토 중이다.
도쿄전력은 전날 화재 때 진화 상황을 직원이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고 밝혀 비난을 사고 있다. 도쿄전력은 전날 오전 9시 넘어 발생한 화재를 “오전 11께 자연진화했다”고 설명했지만 “직원이 육안으로 불꽃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것뿐이었다”며 이날 사죄했다.
3호기도 격납용기 손상됐나
수소폭발로 격납용기를 감싼 콘크리트 건물 천정이 날아가고 외벽도 상당부분 파괴된 3호기에서는 16일 오전 8시30분께 흰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확인됐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3호기 격납용기에서 수증기가 나온다는 보고를 받았다”며 “2호기처럼 격납용기의 일부에서 증기가 새 나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분석 중”이라고 말했다. 격납용기의 압력수조가 손상된 2호기처럼 3호기도 용기에 문제가 생겼을 수 있다는 의미다.
3호기의 핵연료봉은 15일 오후 4시10분 현재 2.3m 정도가 수면 위로 노출된 상태다. 외벽이 반파돼 격납용기 자체가 그냥 외부에 노출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격납용기에 손상이 생겨 방사성물질이 뿜어 나올 경우 이 방사선이 바로 외부로 누출된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의 온도가 상승해 냉각수가 증발한 것으로 본다며 격납용기 손상 가능성을 부정했다.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514개의 사용후핵연료가 든 3호기의 저장소도 냉각기능을 상실한 뒤 수조 온도가 올라가 핵연료가 노출될 우려에 직면해 있다. 사용후핵연료는 이미 격납용기 밖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수조에서 증발한 증기와 냉각수 밖으로 나온 핵연료 표면의 금속이 반응해 발생한 수소가 폭발할 경우 대량의 방사성물질이 외부로 퍼져나갈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이날 자위대 헬리콥터를 동원해 수소폭발로 날아가 버린 외벽 건물 지붕 쪽을 통해 사용후핵연료를 식히는 물을 쏟아 붓는 최후 수단을 동원키로 했지만 주변 방사선 오염으로 일단 연기했다.
1, 2호기 연료봉 상당량 파손
도쿄전력은 수일째 연료봉 노출이 계속되고 있는 1, 2호기의 핵연료가 상당 부분 파괴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장시간 냉각수 밖으로 연료봉이 나와 연료를 감싼 금속에 작은 구멍이 나거나 금이 가 내부에서 강한 방사성물질이 누출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도쿄전력이 격납용기내 방사선 측정치와 운전정지후 경과시간 등을 통해 연료를 덮은 금속의 파괴 정도를 추산한 결과 1호기는 연료집합체 400개의 70%, 2호기는 548개의 33%에 각각 구멍이나 균열이 우려된다.
1, 2호기의 연료봉은 냉각 수위가 충분치는 않지만 최악의 상황에 비하면 지금은 안정된 상태다. 1호기는 15일 오후 3시30분 현재 연료봉(약 4m) 상부가 냉각수 수면에서 1.8m 정도 노출된 상태다. 2호기 역시 비슷한 정도로 노출돼 있다. 연료봉이 물에 반쯤이라도 잠겨 있으면 용융은 피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하지만 2호기의 경우는 격납용기 하부의 압력수조 손상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 격납용기 전체에 이상이 나타난 건 아니지만 압력수조에 구멍이 났거나 균열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고 이를 통해 수조에 담겨 있는 물이 증기 상태로 외부로 배출될 수 있다. 원자력 안전을 전담하는 일본 경제산업성 원자력안전보안원은 16일 기자회견에서 제1원전 정면 부근의 급격한 방사선 수치 상승원인이 압력수조가 손상된 2호기의 영향으로 본다는 도쿄전력의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10시40분께 제1원전 정문에서는 시간당 10밀리시버트의 방사선이 관측됐다.
사용후핵연료 우려 5, 6호기
5, 6호기는 지진 당시 운전정지상태였지만 4호기와 마찬가지로 사용후핵연료 저장소의 안전이 우려되고 있다. 16일 오전 7시 현재 5호기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소 온도는 61.1도, 6호기는 59.5도로 올라가고 있다. 정상상태로는 40도 정도를 유지해야 하지만 이대로 상승할 경우 역시 폭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냉각 기능을 완전 상실한 것이 아니라 일부 작동이 불가능한 상태여서 4호기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것으로 보인다.
도쿄전력은 이날 중 새 송전망을 설치, 외부에서 후쿠시마 제1원전에 전력을 공급해 원자로를 식히는 긴급노심냉각장치(ECCS) 복구에 착수한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보도했다. 이에 성공하면 연료봉이 노출된 1~3호기의 노심용융 위기는 피할 수 있다. 도쿄전력은 전날 직원 대부분을 대피시키고 70명의 최소 인력으로 전원차를 사용해 화재진압용 펌프로 원자로에 해수 주입을 계속하고 있다. 외부 전원이 공급되면 효과적으로 노심을 식히는 고압노심분무기, 격납용기냉각분무기 등의 ECCS가 작동해 냉온정지 상태 유도가 가능해질 수 있다. 하루 이틀이 고비다.
도쿄=김범수특파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