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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군 통합, 만병통치약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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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시군 통합, 만병통치약 아니다

입력
2011.03.16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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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지들이 결혼한다고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환자들끼리 한집에 모여 산다고 건강해 지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나 독일에서 정치인들이 지방자치단체 통합을 밀어붙이려고 할 때 주로 경제학자들이 점잖게 충고하는 말이다.

지방자치단체의 채무가 늘고 주민들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충족하기 어려워지면, 중앙정부나 지방 정치인들은 자치단체 통합을 내걸곤 한다. 마치 고통을 참지 못하는 말기 환자가 마약에라도 의존하고 싶은 것처럼 지자체 통합 유혹은 뿌리치기 어렵다. 독일 북유럽 일본 등에서 질풍노도처럼 몰아붙인 나라도 있고, 미국처럼 일부 국가에선 찻잔 속 태풍으로 그치기도 한다.

선진국도 성공 사례 드물어

최근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자치단체 통합이 한창 거론되고 있다. 정치인들이 중심이 되어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이들 나라의 지자체 절반은 주민이 1,000명에 미치지 못한다. 그야말로 동네 자치를 통해서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어떤 집에 도움이 필요한 노인이 있는지, 자식 걱정이 있는지 등 속사정을 훤히 안다. 이런 자치단체 규모를 키워, 한 자치단체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공무원 숫자를 줄여서 예산 절약을 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자치단체끼리 통합하여 정말 잘 살게 되거나 경비가 확연하게 줄었다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스위스는 2,000년 이후 각 주(Canton)정부에서 막대한 지원금을 걸고 자치단체 통합을 독려하여 주민 수를 최소한 3,000명 수준으로 확대하려고 한다. 하지만 주민투표에서 거부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자치단체의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고 절약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치단체의 내부 개혁을 통하여 낭비 요인을 줄이고, 일 처리 방식을 바꾸어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의 지방자치단체로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나 광역적인 문제는 자치단체간의 협력을 통하여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며, 구태여 지역 공동체를 해체하여 정체성을 파괴하는 자치단체 통합을 채택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정치인이나 행정관료들이 중심이 되어 시군 통합을 마치 지역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밀어붙이곤 한다. 100년 전 농경시대의 행정구역을 한번도 바꾼 적이 없어 교통통신이 발전한 오늘날 비효율적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이런 시도는 주민들의 저항에 부딪쳐 좌초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에서는 특별법까지 제정하여 다시 추진하려고 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행정구역이 100년이나 된 낡은 제도라고 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지방행정구역 내지 자치구역을 극단적으로 자주 변경해온 나라도 없다. 이미 50년 전에 군사정부는 1,407개 면과 85개 읍으로 구성된 기초지방자치단체를 140개 군으로 통합하여 기초자치단체 숫자를 10분의 1 이하로 줄였다. 불과 10여 년 전에도 대대적인 시군 통합을 했다. 그리하여 현재 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 규모는 프랑스나 스위스의 100배가 넘는 수준이다. 규모가 클수록 효율적이라고 한다면 이미 우리나라의 지방행정은 스위스나 프랑스보다 100배나 효율적이어야 한다. 과연 그러한지 깊이 생각해 보고 추진할 일이다.

지방행정 개혁과 절약이 먼저

문제의 심각성은 시군 통합이 거론되면 지방 개혁을 위한 내부적인 자구노력은 중단되고, 지방자치단체간의 협력 모색도 물 건너가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환자가 마약에 의존하여 체력 회복의 기회를 놓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시군 통합을 주장하는 정치인들의 좋은 의도를 의심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영국 속담에 ‘지옥에 이르는 길은 좋은 의도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이 있다. 의술이 빈약한 돌팔이 의사의 시술로 병이 악화되어도 치료의 의도는 좋았다고 용서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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