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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대피!" 전화에 깜짝… 여성ㆍ노인부터 '한밤의 엑서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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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대피!" 전화에 깜짝… 여성ㆍ노인부터 '한밤의 엑서더스'

입력
2011.03.1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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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도호쿠 대지진/방사능 공포]한국일보 김혜경·남보라 기자의 센다이 탈출기100여명 못 떠난 채 영사관서 밤새 TV만 '피폭' 걱정으로 술렁버스 정류장·주유소엔 수 백미터 대기 행렬방송선 구체 정보 없이 "정부는 노력중" 반복만

"긴급상황이니 일단 대피하라!"

15일 오전 1시, 서울 본사에서 걸려온 전화. 수화기 너머 목소리는 다급했다. TV를 켜자 NHK가 '원전 2호기 원자로의 노심이 노출됐다'는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는 "이대로 노심 노출이 계속되면 녹아내리고 심각한 상황에 이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아찔했다.

전날 밤 11시부터 이 상황이 보도되고 있었지만 기자는 센다이(仙台)시에 파견돼 막도착한 한국 구조대 취재를 하느라 2시간 뒤에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백방으로 사실관계를 추적하고, 데스크와 비상회의를 한 끝에 일단 센다이 철수를 결정했다. 오전 1시40분, 허겁지겁 짐을 꾸려 센다이 한국 총영사관으로 향했다.

영사관은 오히려 차분했다. 일부 언론사 취재진은 이미 대피를 한 상태였고, 방송기자들은 서둘러 장비를 챙기고 있었다. 교민들은 영사관 직원들이 나눠준 번호표를 들고 대피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피는 노약자와 여성이 우선이었다.

정원보다 더 태운 10인승 버스는 예정보다 30분 뒤인 오전 2시에야 공항이 있는 니가타(新潟)로 출발했다. 전날 밤 7시에 출발한 교민들까지 모두 58명이 센다이를 떠났다. 영사관에 남아 삼삼오오 TV 앞에 모인 교민들은 방사성물질 노출에 대한 걱정으로 술렁였다. 100여명이 남았다.

영사관 직원은 "(영사관에) 들어오는 교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어 대피차량을 꾸준히 운영해도 남아있는 교민 수는 100여명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며 "기름이 없어 영사관까지 오지 못하는 교민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고 걱정했다.

오전 2시가 조금 지난 시각,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이끌고 영사관을 나와 센다이 탈출을 감행했다. 도쿄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에 올랐다. 국도를 제외한 고속도로는 경찰차, 앰뷸런스, 소방차 등 '긴급차량 확인증'이 붙은 차만 통행이 허락됐다. 기자의 차량엔 미야기(宮城) 현청에서 발급받은 확인증이 있었다.

반대 차선으로는 응급구호차량과 자위대 차량, 소방차 등이 쉴새없이 지나갔다. 라디오는 밤새도록 원전 관련 실시간 속보를 내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노력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정작 일본 정부의 입장은 나오지 않았다. 뉴스 중간중간에 편안한 연주음악과 빌리 조엘의 'Honesty' 같은 조용한 팝송이 흘러났다. 하지만 침착하라고 달래듯 귓가를 감싸는 감미로운 선율이 오히려 섬뜩하게 느껴졌다.

두고 온 교민들이 하염없이 눈에 밟혔다. 한결같이 센다이를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대부분은 발이 묶인 상태였다. 동이 난 기름 때문에 교통은 마비됐고, 원전 방사능 유출에 대한 확실한 정보와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일본 정부 탓에 사람들은 우왕좌왕했다. 기름을 팔지 않는 주유소에는 여전히 혹시 하는 생각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의 줄이 끝도 없이 이어져 있을 것이다. 그들도 무사히 센다이를 벗어날 수 있을까.

전날 센다이 버스정류장에는 서쪽 야마가타(山形)현으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1,000여명이 400m 가량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다. 대부분 도호쿠대(東北大) 학생이거나 센다이에 직장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센다이 공항은 이미 폐쇄됐다. 버스로 3시간 거리인 야마가타에는 공항이 있어 다른 도시나 나라로 이동할 수가 있다.

남편이 도호쿠대에 다닌다는 교민 박아영(34)씨는 한살배기 딸을 꼭 껴안고 있었다. 박씨는 "엊그제 한국의 가족과 통화를 했는데 부모님이 울고불고 난리였다. 이번에 가면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며 몸서리쳤다. "야마가타에 도착해도 비행기 티켓을 구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 20대 일본 직장인은 "회사 상사가 집에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라고 했다"며 "가족이 야마가타에 있는데 어떻게 연락해서 만나야 할지 모르겠다"며 발을 굴렀다. 그는 두 칸 정도밖에 남지 않은 휴대폰의 배터리 잔량 표시 눈금을 자꾸만 쳐다봤다. 전화는 그나마 잘 터지지도 않았다.

츠미사 에키로(69)씨는 "아키타에 온천 여행을 왔다가 발이 묶였다"며 "이틀은 친구 집에서 지냈는데 전기도 끊기도 물도 안 나와서 더 이상 생활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예정대로라면 그는 지금쯤 야마가타에서 하네다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깜빡 잠이 들었던가. 일본 취재 4일 동안 누워서 잔 건 영사관 회의실에서 딱 하루뿐이다. 뜬눈으로 지새거나 차에서 칼잠을 잤다. 시계바늘은 오전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3시간을 더 달려 도쿄 시내에 들어섰다. 대지진 피해는 마치 다른 나라의 일인 양 도시는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우선 시내 병원에서 방사능 피폭 검사를 받았다. 방사선 ?혈액 검사, 그리고 진찰. 다행히 오염되지는 않았다.

센다이와 후쿠시마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이날 아침 실시간 방송된 일본 정부 기자회견에서 기자들은 "원전 폭발 원인을 밝히라"며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정부는 "파악하지 못했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

센다이에서 마주쳤던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오늘 아침에도 주유소와 편의점에 길게 줄을 서고 있을 것이다. 전날 도쿄에 사는 아들을 만나러 야마가타로 떠난다던 할머니는 목적지에 닿아 아들을 만났을까. 기자의 몸은 떠나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센다이에 머물렀다. 소망한다, 그들이 무사하기를.

센다이·도쿄=김혜경기자 thanks@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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