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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로 본 한국, 한국인] <3> 초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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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의 신조어로 본 한국, 한국인] <3> 초식남

입력
2011.03.15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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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식남이란 남성다움을 상실한, 마치 초식동물처럼 온순하고 착한 성품의 남자를 뜻하는 신조어다. 여기에는 이중적 의미가 있어서 좋은 쪽으로는 선량하고 착한 남자, 나쁜 쪽으로는 용기와 열정이 없는 비리비리한 남자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초식남의 주요 특징은 도전정신이나 결단력의 결여, 소극성과 수동성, 개인주의적 취향, 감각적 쾌락 추구, 정치사회적 무관심 등이다.

초식남은 남에게 해코지를 하지 않을 만큼의 착한 인상이나 성품을 가지고는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개조하기보다는 세상에 순응하려고 하며 육식동물이 설치는 세상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어먹고 있는 겁 많은 초식동물이다.

사회심리학적 견지에서 볼 때, 초식남이란 경쟁, 나아가 사회를 두려워하고 회피하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인 셈이다. 따라서 초식남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착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개인주의화하고 비겁함이 커져 결과적으로는 삭막해질 것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칠 나쁜 의도는 없더라도 공동의 이익이 아닌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면 사회가 붕괴될 수 있음은 심리학에서도 '죄수의 딜레마'나 '공황 이론' 등을 통해 반복적으로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아무튼 초식남은 뿌리 깊은 개인주의자라 타인을 제대로 사랑하지 못하며, 마음이 허약한 도피자이므로 잘못된 세상을 용감하게 바꾸지 못한다. 이런 초식남들이 건강한 연애를 할 리 없고, 결혼을 한 뒤에도 부부관계나 가족관계에서 훌륭한 남편이나 아버지의 역할을 할 리 없다. 그래서 그들은 심리적으로 아내를 비롯한 타인들에게 의존하면서 살아가는 편이다.

운 좋게 결혼에 성공한 초식남들의 절대다수를 포함해 부부관계에서 결정권을 거의 행사하지 못하는 불우한 남편들이 있다. 친구들과 어디를 놀러 가려 할 때,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려고 할 때마다 그들은 명시적이건 암묵적이건 어김없이 아내의 허락을 구해야 한다. 단순한 협조나 이해가 아닌 '허락'을 구하는 것이다!

'키친 패스(kitchen pass)'란 살림을 맡고 있는 아내의 허가증을 뜻하는 신조어인데, 공처가라고 할 수도 있는 이런 남편들에게 그야말로 키친 패스는 필요충분조건이다. 키친 패스를 필요로 하는 남성들은 때때로 오늘의 한국을 지배하는 것이 여성이라는 흥미로운 주장을 하기도 한다.

그들에 의하면 여성(아내)은 곳간열쇠를 틀어쥔 경제적 지배자요, 남편과 아이들에게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권력자요, 가족의 미래를 좌지우지하는 운명의 통제자이다. 반면에 남성(남편)은 한평생 돈을 벌어다가 여왕개미에게 바쳐야 하는 일개미요, 줄곧 밖에서만 일하느라 가정과 자식들에 대한 영향력을 상실한 영원한 아웃사이더요,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결국엔 아내의 결심과 고집을 당하지 못하는 애처가일 뿐이다. 물론 그들의 주장이나 하소연은 나름대로의 자기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권을 행사하는 아내를 독재자라고 비난하거나 자기의 가련한 신세를 한탄하기 전에 남편들은 먼저 자신이 초식남 같은 사람이 아닌지부터, 그런 관계를 스스로 자초한 것은 아닌지부터 반문해볼 필요가 있다.

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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