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국무총리 후보자 김태호씨가 4ㆍ27 재보궐 선거에서 경남 김해을 지역 국회의원 출마를 선언하면서 밝힌 '재기의 변(辯)'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정치적 행적은 일단 뒷전이고, 그가 자신을 국민적 영웅 박태환에 비유한 발언 때문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15살의 어린 박태환 선수는 온 국민의 기대를 받으며 출발선에 섰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시작도 못하고 돌아왔다.
그러나 4년 뒤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 수영 최초의 금메달을 대한민국에 안겼다." 그는 이어 "(국민들이) 믿고 다시 기회를 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설명도 붙였다.
김씨와 박 선수의 공통점은 아무리 보아도 '어린(김씨의 경우 젊은)', '시작도 못하고 돌아왔다'는 대목 외에는 보이지 않는다. 굳이 하나 더 찾는다면 '국민의 기대' 정도에 있을 듯하다. 출발선에 선 상황이 확연히 다르고, 너무 긴장한 탓이라는 실패의 원인에서도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다시 국민 앞에 나서기까지 4년(김씨의 경우 6개월) 동안 두 사람이 했던 노력과 행태도 유사점이 전혀 없으며, 믿고 다시 기회를 주었다는 설명도 자의적으로 보인다.
아무도 공감 않는 '허황된 비유'
하지만 출마선언에 즈음하여 김씨의 실수와 오판은 이 정도에 그친다고 보아도 될 듯싶다. 그제 지역 내 전입신고를 하고 어제 한나라당 예비등록 마감을 몇 시간 앞두고 돌연 선언과 등록을 마친 과정만 살피더라도 여권 상층부의 '허락과 독려'가 전제됐다는 것이 상식이다. 한나라당의 공식적 예비후보 6, 7명이 이미 선거활동을 시작하고 있었다는 대목도 정황을 뒷받침한다.
김씨의 출마선언이 그러한 한나라당 상층부의 무지와 오만에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 국민들이 청문회 과정에서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하고, 본인도 (긴장한 탓에)거짓말을 하게 됐다고 인정한 일을 그 상층부만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잘못이다. 이른바 박연차게이트와 관련해 서로 알고 지냈으면서 모르는 사이였다고 말하고, 다시 사진을 보고도 기억에 없다던 진술을 국민들은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상층부의 다음 잘못은 이렇게 박연차게이트의 불쾌한 기억이 새로 돋아나더라도 자신들에게 불리할 것이 없다는 착각이다. 그 사건에서 유죄판결을 받아 물러난 야당의원 자리를 놓고 벌어지는 김해을 선거에 그 사건에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받은 김씨이기에 상대적으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 어리석어 보인다.
또 다른 잘못은 김씨가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업고도 낙마하게 된 근본 이유가 여전히 (긴장한 탓에 하게 된) 실언 정도로 여기고 있다는 점이다.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은행대출법 위반, 취업 위장, 관용차와 도청직원 사용(私用) 등 숱한 도덕적 결함이 드러나면서 '양파 총리'라는 비난을 받지 않았다면 한나라당 내부에서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 어려웠을 터이다. 또 있다. 그 상층부는 공무원 자격이 없었던 사람이 6개월 정도의 반성을 거치면 국회의원 자격이 생긴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굳이 따지자면 법을 집행하는 공무원보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에게 준법정신은 더욱 필요하다. 김씨처럼 "그 동안 꾸중 많이 듣고, 반성 많이 했다"고 말만 한다고 국민과 유권자의 기억과 상식이 지워지고 바뀌는 게 아니다. 6개월 전을 더듬어 보면 지금 그에게 출마를 허락하고 독려한 한나라당 상층부의 잘못이 왜 이것들뿐이겠는가.
출마 독려한 한나라당이 더 문제
김씨의 출마선언은 많은 국민의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그 관심이 왜 출사표의 곁가지에 불과한 '박태환 비유'에 쏠리는지, 왜 박태환을 사랑하는 많은 팬들이 불쾌하게 여기는지 김씨는 알아야 한다. 한나라당 상층부가 누구이고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그 정도의 결정과 판단이 내려오는 곳이라면 앞으로의 행보가 더 걱정스럽다. 혹시 "너무 긴장한 탓에 그런 결정을 한 기억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되는 건 아닐까.
정병진 수석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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