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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죽음의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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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죽음의 재

입력
2011.03.15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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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궁기를 넘기기 힘들었던 초등학교 시절, 아까시꽃은 허기를 달래는 좋은 먹거리였다. 어느 해 봄 선생님들은 그런 아까시꽃을 먹지 말라고 했다. '중공'에서 날아온 낙진, 즉 '죽음의 재'가 꽃에 묻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도 배가 너무 고팠던 시골소년들은 '중공'을 욕하고 원자탄 수소폭탄의 위력을 떠들면서 아까시꽃을 따먹었다. 1964년 10월 첫 원폭실험, 1967년 6월 첫 수폭실험에 성공한 중국은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에 가입한 1996년까지 신장 위구르 자치주 롭 누르 사막 지하와 상공에서 46차례의 핵실험을 실시했다.

■ 중국 핵실험의 피해가 공식 집계된 바는 없다. 그러나 한 전문가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32년간 총 148만명이 방사능에 노출됐고, 약 19만명이 암과 백혈병 등으로 사망했다고 추정했다. 한반도에 날아온 낙진에 피해를 당한 한국인도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1986년 4월 26일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사고는 엄청난 양의 방사성물질을 뿜어냈다. 그 죽음의 재는 바람을 타고 옛 소련지역과 북ㆍ동유럽 등 광범위한 지역에 퍼졌다. 수십만에서 수백만 명이 여기에 노출됐고, 이로 인한 사망자도 1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 원전 사고로 발생하는 낙진에는 세슘과 요드 등 여러 가지 치명적인 방사성 물질이 포함돼 있다. 강력한 방사선 방출로 암과 같은 치명적 질환을 유발하는 물질들이다. 낙진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지만 극미한 입자는 성층권까지 올라가 수년에서 수십년 간 떠돌다 비나 눈에 섞여 낙하한다. 한 번 발생한 죽음의 재는 지구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이 물질들은 반감기가 수 년에서 수십 년이나 돼 오염기간이 매우 길다. 체르노빌 원전 낙진피해를 당한 지역에서는 상당기간 가축 방목과 작물 재배가 금지됐었다.

■ 대지진에 강타 당한 일본 후쿠시마 원전들이 잇따라 심각한 이상을 일으켜 일본 열도가 공포에 휩싸였다. 세슘과 요드 피폭자가 크게 늘고 방사선량이 급증하는 지역이 확대되면서 최악의 상황도 배제할 수 없는 지경인 모양이다. 우려대로 원자로 노심이 녹는다면 정말 끔찍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우리나라는 편서풍 덕에 일단 낙진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국의 핵실험 때와는 또 다르다. 그러나 체르노빌 원전 죽음의 재가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퍼졌듯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만일의 사태 대비는 우리라고 예외가 아니다.

이계성 논설위원 wk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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