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젼에서 원전 폭발 장면이 방영되고 있는데 총리관저에는 1시간 동안 연락도 없다. 도대체 어떻게 된거냐.”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총리가 15일 새벽 도쿄전력 본사를 찾아가 이렇게 호통을 쳤다고 요미우리(讀賣)신문이 보도했다.
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후쿠시마(福島) 제1원자력발전소 방사성 물질 유출대책을 책임질 정부ㆍ도쿄전력 통합대책본부 설치를 지시했다. 간 총리가 직접 통합대책본부장을 맡았다. 하지만 불과 수시간 후 제1원전 2호기의 격납용기가 손상되며 대량의 방사성 물질이 유출되는 최악의 상황이 시작됐다. 일본 정부가 늑장 대응의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시아 경제 전문가 윌리엄 페색은 이날 블룸버그 칼럼에서 “원전의 방사성 물질 유출은 일본 시스템에 대한 국제적 신뢰를 실추시키는 사고”라고 지적했다.
사고원전 설계부터 결함
후쿠시마 원전은 건설초기부터 폭발위험성에 대한 경고가 잇따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의 14일 보도에 따르면 1972년 미국 원자력위원회(AEC)는 후쿠시마 원전을 설계한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동일기종 원자로가 대형 격납 돔 구조에 비해 폭발에 취약하며 노심용융이 발생할 경우 방사성 물질 누출 위험도 더 크다고 경고했다고 14일 보도했다. 또 1986년에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도 격납 기능에 문제가 발생할 확률이 90%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난해 6월 일본 시민단체도 전력공급이 중단되면 후쿠시마 원전이 위험할 수 있다고 밝히는 등 사전 경보가 이어졌으나 어떤 대책도 세워지지 않았다. 후쿠시마 원전 외에도 동일한 기종의 원자로 8개가 현재 일본에서 가동 중이다.
일본정부는 위험축소 일변도
후쿠시마 제1원전 1호기에서 첫 폭발사고가 일어난 12일 이후 일본 정부의 발표는 줄곧 갈팡질팡해 불신을 자초했다. 페색은 “일본 정부는 누출된 방사성 물질 양이 극히 소량이라면서 동시에 원전 인근 주민들에게는 대피령을 내렸다”고 꼬집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정부의 위기대응에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했으며, 한 일본 의원은 “정부가 구체적 정보 없이 ‘침착’만을 강조, 혼란이 커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체 해결을 고집하다 방사성 물질 유출이 본격화한 이후 15일 뒤늦게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도움을 요청한 것도 도마위에 올랐다. 일본 정부와 협의에 착수한 IAEA는앞으로 매일 후쿠시마 원전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실시할 예정이다.
도쿄전력 2007년에도 방사성 물질 누출
54개의 원자력발전소를 보유하고 있는 일본은 안전대책이 완벽하다고 홍보해왔으나 최근 10여 년간 원전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잇따랐다. 도쿄전력의 안전불감증은 이미 여러 차례 사회문제가 됐었다. 2002년 도쿄전력의 내부인사가 원전 보수와 관련된 허위보고서 작성을 폭로, 회장과 사장이 사임하고 정부는 원전을 일시 정지하고 안전검사를 실시해야 했다. 또 2007년에는 도쿄전력이 운영하는 세계최대 규모의 가시와자키가리와(柏崎刈羽原) 원전에서 규모 6.8의 지진으로 화재 및 방사성 물질 유출 사고가 발생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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