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스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진에서 벗어나 본격적 출구전략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던 찰나. 일본 도호쿠(東北) 대지진의 충격이 강타하면서, 세계경제는 다시 시계제로 상황이 됐다. 향후 방사능 누출의 추이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미국 유럽 등 선진국들은 출구로 향하던 발길을 접고 양적완화ㆍ제로금리 기조쪽으로 다시 유턴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진원지인 일본은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있다. 중앙은행인 일본은행(BOJ)은 14일 15조엔을 시장에 긴급 투입한 데 이어 15일에도 8조엔을 추가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지진의 피해 규모를 감안할 때 향후 유동성 공급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될 전망. 미즈호증권의 우에노 야스나리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은행의 엄청난 자금 공급은 당국 또한 지진으로 인해 일본 경제가 받을 부정적 여파를 상당히 우려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특히 추가적 엔화상승을 막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세계 경제의 8%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일본이 휘청대는 경우 글로벌 경제전체의 타격은 불가피하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차지하고 있는 가치 ▦일본의 부품산업이 떠받치고 있는 세계 제조업 ▦지진 사태로 인한 국제 원자재 가격 상승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단순한 경제적 비중 그 이상의 파장이 예상된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 세계경제 성장률이 1~2%포인트 하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결국 일본의 지진 및 원전 방사능 누출사태는 다른 나라들의 거시정책기조에도 큰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당장 15일(현지시간)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선 지금의 저금리를 지속시키겠다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우세하다. 바클레이캐피탈리서치 피유쉬 고얄 부사장은 "(이번 지진으로 인해) Fed는 예상보다 오랜 기간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선 당초 하반기~연말로 예상됐던 제로금리 종료(금리인상)시기가 내년 이후로 늦춰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의 조기 종료 전망도 쑥 들어갔다. 경기회복이 가시화하면서 양적완화(국채매입)가 6월 이전에 마무리될 수 있다는 예측들이 일부 나왔지만, 이번 지진 사태로 연기가 불가피하다는 것. 일각에선 "3차 양적완화 조치도 배제할 수 없다"는 비관적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유럽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최근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4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내비쳤지만, 곽 수석연구원은 "금리인상 시기가 4월보다는 많이 늦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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