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아이티 대지진 때, 한 장의 섬뜩한 사진이 있었다. 대혼란과 약탈이 계속되는 속에서 한 흑인 남자가 식량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오른손에 시퍼런 식칼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달랐다. 11일 발생한 대지진으로 비슷한 상황을 맞이했지만 누구도, 어디에서도 그런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그들이라고 비통하지 않고, 나와 내 가족의 생존이 절박하지 않으랴만 냉정과 질서와 타인에 대한 배려를 잃지 않고 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니다. 그 놀라운 아름다운 인내, 용기, 시민의식에 세계가 감동하고 있다.
■ 3무(無). 재앙이 닥치면 자기 생존본능에 저지르기 쉬운 사재기와 약탈, 새치기, 압사사고가 일본에는 없다. 슈퍼마켓 앞에서 불평 한마디 없이 질서정연하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수백 명의 일본인들. 먼저 왔다고 욕심내지 않고 뒤에 서 있는 이웃을 위해 하루만 버틸 최소한의 생필품만 사는 사람들. 긴급 지원된 식수차 앞에서 누구도 "조금 더 달라"고 말하지 않는다. 몇 시간씩 버스를 기다리면서 불평 한마디 없다. "나 먼저"라고 난리를 치지 않고 옥상으로 올라가 흰 옷가지로 커다랗게 'SOS'를 써놓고는 구조대가 찾아오길 가만히 기다린다.
■ 이런 일본인들에 중국 언론은 감탄한다. 영국의 한 신문은 "인류 정신의 진화의 증거"라고까지 칭찬했다. 일본의 방송들은 어떤가. 거짓도 않지만, 과장도 않는다. 자기 감정에 빠져 냉정을 잃기보다는 비상재난체제로 전환해 정확한 정보와 대처요령을 제공해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는 데 앞장선다. 사망자가 벌써 1만 명을 넘어섰지만 카메라 앞에서 울고 불고 하는 유족도 없고 설령 있다 해도 내보내지 않는다. 일부러 그런 장면만 강조해 반복하고, 없으면 연출하는 '선정성'으로 국민을 불안과 흥분에 빠지게 하는 우리 방송과는 분명 다르다.
■ 경제도, 정치도, 과학도 아니다. 몇 번의 엄청난 자연재해와 패전 속에서 일본을 다시 일어서게 한 것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고, 누구도 '예외'이지 않은 이런 일본인들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물론 교육과 훈련의 힘이다. 평소 가정과 사회에서 예절과 공중도덕, 자기절제, 더불어 살기를 가르치고 실천하는 일본. 유치원 때부터'단 한 번의 경우'를 위해 재난에 대처하는 훈련을 수없이 반복하는 일본. 만에 하나 우리가 이런 재난을 맞았다면. 영화 처럼 했을까."그 나라 국민의식의 수준은 재난이 닥쳤을 때에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이대현 논설위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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