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떤 자리에서 언론인 출신 한나라당 의원이 들려준 얘기다. "최근 서울 강남ㆍ북의 대형 서점을 둘러보다가 크게 놀랐다. 인문사회분야 베스터셀러 코너를 소위 진보 성향 혹은 개혁적 자유주의 인사들의 책이 거의'점령'하다시피 해서다.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책이 인기를 끈다기에 한때의 트렌드로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더라. 두 사람의 책은 물론 서울대 조국 교수와 이준구 교수,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진보이론가 진중권씨 등의 이름이 곳곳에서 보이고 김난도(서울대), 김호기(연세대) 교수 등 이른바 '리무진 리버럴'의 영향력도 예전과 확실히 다름을 느꼈다."
2만달러 시대의 욕구 변화 뚜렷
그는 정치든 경제든 안보든 언론이든 이런 바닥의 욕구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지지를 얻기는커녕 외곽으로 밀려나 잊힐 것이라고 장담했다. 특히 'GDP 1조달러-1인당 소득 2만달러'시대에 치러지는 내년 대선 국면의 최대 화두는 자유 정의 공정 형평 박애 복지 등 진보적 가치에 모아질 것이라며,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만개된 지금 그런 가치는 더 급속히 확산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최근 공정사회 구현의 전략과 과제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쏟아진 공정과 정의 담론은 대ㆍ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시정 등 주로 경제적 형평을 확보하는 장치에 초점을 맞춰왔지만, 좀 더 시각을 넓혀 시장경제 체제의 안정과 성숙을 보장하는 장치로 간주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에서 대기업이 이익을 독식하는 사이에 정권은 '권력 장사'를 독점해 자리를 나눠먹고, 기득권층이 공연한 이념 잣대로 복지 논쟁을 호도하면서 회복의 열매를 혼자 즐기는 동안 국민의 평균적 삶은 더욱 팍팍해진 사실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상생 혹은 동반성장을 통한 건전한 기업 생태계 조성의 필요성이 정치권으로 옮겨가 기술 유용ㆍ탈취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도입된 것 등은 이런 맥락에서 큰 성과다. 그런데 찬찬히 성과를 음미하고 뜻을 확산시킬 겨를이 없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섣불리 제기한 '(초과)이익공유제'가 재계의 표적이 돼 동반성장 프로그램의 기본 틀을 흔들려는 시도가 집요하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정 위원장의 이익공유제 발언은 총리 시절 세종시 백지화 발언과 비슷하다. 뜻만 좋으면 우선 던져놓고 전략과 실행방안은 천천히 생각해도 된다는, 순진하고 요령부득의 그 발상 말이다. 뒤늦게 "대기업이 목표치를 넘는 이익의 일부를 기금으로 조성해 중소기업의 연구개발이나 시설투자를 지원하자는 의미"라고 주워담고 있으나 한 번 드러낸 약점을 감추기는 힘들다.
여기에 이건희 삼성회장이 기름을 부었다. 기업인 집안에서 크고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이익공유제는 듣지도 보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듣보잡'같은 개념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이 회장은 공산주의까지 거론했다. 때문에 우리나라 최대 재벌 총수와 총리를 지낸 유력한 교수가 경제학 교과서에 그런 개념이 있니 없니 하며 다투는 유치한 일마저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이 회장이 너무 나갔다. 이른바 속물적 시장론자들이 신봉하는 '보이지 않는 전지전능한 손'이 시장의 효율성과 공정성을 보장한다고 믿는 듯해서다.
공정대의와 추진전략 함께 가야
사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은 애덤 스미스의 방대한 저작 을 통틀어 단 한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또 스미스는 시장의 객관적 질서가 안정적으로 확대 재생산되려면 공동체의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정의로운 법과 제도가 합당하게 작동해야 한다는 입장을 결코 놓지 않았다.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 등은 "손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초 그런 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정보의 비대칭성에 의한 시장실패가 일상적인 현상이라고 말한다.
이 회장과 정 위원장의 언쟁이 흥미로운 것은 시대정신을 읽는 뜨거운 가슴이 없는 집단과 대의를 실현할 차가운 머리가 없는 그룹이 앙앙불락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드러내서다.
이유식 논설위원 y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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