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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영화를 신인이 감독?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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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작 영화를 신인이 감독? 할리우드와 충무로의 차이

입력
2011.03.14 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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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촬영에 들어간 할리우드 영화 '47 로닌'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절치부심하는 47명의 낭인 사무라이 이야기를 다룬다. 일본의 고전 <추신구라(忠臣藏)> 를 밑그림 삼은 이 영화는 키아누 리브스와 일본 유명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 등이 출연하는 제작비 1억7,000만 달러에 달하는 블록버스터다. 감독은 칼 린쉬. 단편과 맥주 광고를 찍었을 뿐 장편영화 연출 경험은 전무하다.

새로운 '스파이더맨' 창출을 기치로 내건 '어메이징 스파이더맨'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감독 마크 웹은 감성 충만한 멜로영화 '500일의 썸머'로 지난해 장편영화 신고식을 치렀다. '어메이징 스파이더맨'의 제작비는 2억 달러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진 감독들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접수하고 있다. 장편영화나 주류 상업영화를 만들어보지 못한 감독들이 잇달아 대형 영화의 연출을 맡으며 새로운 기류를 조성하고 있다. 블록버스터는커녕 중급 영화의 메가폰도 검증된 감독에게 쥐어주는 충무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신진 감독들의 벼락 출세는 할리우드에선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소셜 네트워크'로 유명한 데이비드 핀처는 '에이리언3'(1992),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마이클 베이는 '나쁜 녀석들'(1995),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2009)의 맥지는 '미녀 삼총사'(2000)로 각각 할리우드에 첫 발을 디뎠다. 하지만 이들의 데뷔작은 최근 신진들이 떠안은 묵직한 대작들에 비하면 경량급에 해당한다.

미국 연예주간지 할리우드 리포터 최근호는 신진 감독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이유로 디지털 기술의 발전을 우선으로 꼽았다. 어린 시절부터 디지털 비디오카메라와 디지털 편집기술을 익힌 신진 감독들은 저렴한 비용으로도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감독들이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우회로 대신 할리우드 주요 관계자들에게 이메일로 자신의 단편영화를 직접 보여주는 전략을 택하고 있는 점도 이들의 부각을 이끌고 있다. 우수한 영화 인재를 적은 돈만 주고 쉽게 다룰 수 있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할리우드는 새로운 제작 패턴을 모색 중이지만 충무로는 갈수록 과감한 결정보다 소심한 선택을 선호하고 있다. 신인들의 블록버스터(한국에선 보통 제작비 100억원 이상을 블록버스터로 친다) 연출은 언감생심이다. 올해 개봉 예정인 대작 '마이웨이'(감독 강제규)와 '7광구'(감독 김지훈), '퀵'(감독 조범구)은 검증된 감독들의 지휘아래 놓여있다. 강제규 감독은 '태극기 휘날리며'(2004), 김지훈 감독은 '화려한 휴가'(2007)를 만든 스타 감독이다. 조범구 감독은 '양아치 어조'(2004), '뚝방전설'(2006)로 연출력을 쌓아왔다.

불황 여파도 있고 감독 위주의 전통적인 제작시스템의 영향도 있지만 노력한 제작자나 프로듀서의 쇠퇴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안전한 영화'를 선호하는 대기업 계열 투자배급사들이 충무로를 장악하고 도전적인 제작자와 프로듀서의 발언권이 약화되면서 새로운 피 수혈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영화사 보경사의 심보경 대표는 "신인 감독이 원활하게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프로듀서가 잘 뒷받침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촬영 전 철저한 사전 준비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 등 시스템의 부재도 신인 등용에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이진훈 롯데엔터테인먼트 투자팀장은 "국내의 경우 촬영 현장에 가변성이 많아 신인 감독에게 중책을 맡기기 어렵다. 지금 충무로는 신인이 블록버스터를 맡을 만한 환경이 못 된다"고 주장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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