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 죽는다고 아우성 치던 인문학이, 거죽만 놓고 판단한다면 부흥기에 접어든 듯하다. 대학, 비제도권 강단, 백화점 문화센터, 동사무소 어딜 가나 인문강좌가 개설돼 수강생을 끈다. 초판만 소화해도 다행이라는 인문서적이 줄줄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그러나 한편에선 작금의 인문학 범람을 인문주주의 몰락의 징후로 해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학 울타리 밖에서 인문학 보급에 앞장섰던 연구공동체 ‘수유+너머’의 연구자들이 한국의 범박한 인문학 소비를 짚어 보는 심포지엄 ‘인문학 신드롬과 불온한 인문학’을 12일 서울 대학로 흥사단 강당에서 열었다.
최진석씨는 홍수를 이룬 한국 인문학 소비 현실을 짚은 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라고 자문했다. 그는 “이젠 인문학의 과소 소비가 아니라 과잉이 문제”라며 이렇게 분석했다.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은 언제나 소비에 추월당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인문학이 차고 넘치는 만큼 허겁지겁 소비되고 재빨리 상표를 바꿔 달며 다시 유통 회로에 투입된다. 인문학이 죽어가는 이유는 새로운 생산을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이 같은 소비의 순환 속에 갇혀 생산의 새로움을 박탈당하는 탓이다.”
또한 최씨는 요즘의 인문학이 역사ㆍ계급적 맥락이 표백된 휴머니즘을 유통시키고 문화주의로 포장된 권력에의 순응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족의 영광과 개인의 행복은 별개의 문제라고 또박또박 말하는 것, 삶의 주체로 만족해 하는 자아에게 꼭두각시가 비친 거울을 내미는 것, 평화로운 일상의 배면에 배제된 이웃이 있음을 폭로하는 것”과 같은 불온성이 오히려 인문학의 본령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정훈씨는 권력과 돈에 포박된 한국 인문학의 현실을 지적하며 인문학의 야만성 회복을 주장했다. 그는 한국연구재단의 인문한국(HK) 프로젝트에 대해 “인문학 교수들을 국가가 발주하는 프로젝트의 매니저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한국연구재단이 인정하는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한 자들을 그렇지 않은 자들보다 더 인문학적 사유에 적합한 자격을 가진 자들이 된다”는 것. 정씨는 “이런 선별 작업을 통해 대학 인문학은 점점 더 해당 분야의 전공자들만 관심을 갖는 폐쇄적 공간이 돼 버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도권 밖의 인문학은 돈, 곧 대중적 수요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인문학이 “청소년들의 논리적 사고와 창의력을 길러 주고,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창조적 경영을 위한 통찰력을 제공하며, 무의미한 일상에 지친 사회인에게 삶의 의미를 전해 주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정씨는 이런 상황에서는 공부하는 대중은 “강사가 전해 주는 지식을 수용하는 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정씨는 “국가에 사로잡힌 문명인이 아닌 그와는 다른 삶의 방식을 위해 국가와 전쟁도 불사하는 야만인들의 도래, 야만인들의 생성을 기다린다”는 표현으로 인문학의 진짜 존재 가치를 설명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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