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상호
반쪽 몸의 사내는
침대에 누워 주문을 한다
딱딱해진 말의 언어 말고
신경이 살아 있는 문자 언어로
머리맡 노트에 적는다
― 올해 봄은 냄새가 어떤가?
여보, 목련 좀 꺾어다 줘
주문서를 받아든 아내가 급히
목련 사발을 들고 온다
봄맛에 빠져 있는
반신불수 사내를 엎어놓고
물수건으로 등을 닦는다
가운데 박혀 있는 등뼈가
오래 쓴 스프링처럼 구부러졌다
사용한 페이지에 비해
남은 페이지가 너무 얇은 노트,
― 올해는 냄새가 더 줄었네
그새 거뭇해진 목련 꽃잎처럼
그의 스프링 노트 한 장
또 과거 쪽으로 넘어간다
● 컴퓨터로 글을 쓰다보면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라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열 손가락을 사용해 삿대질을 해대는 느낌이다. 노트에 글을 쓸 때는 글 속으로 쏟아져나가는 나와 내 속으로 스며드는 글의 힘이 함께 공존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자판기로 문자를 두드릴 때는 일방적으로 문자를 토해 놓는 것 같다. 자판기로 문자를 치는 행위는 지시, 삿대질, 투척 이런 단어를 연상시킨다.
사내의 등은 슬픈 노트네요. 사내를 엎어 놓고 아내는 물수건으로 글을 쓰네요. 아내가 쓰고 싶은 문자 하, 많아 아내는 노트를 닦기만 하네요. 아내가 쓴 마음 글씨 빽빽할 텐데 보이지 않네요. 마음 글씨는 늘 형상을 넘어서지요. 이 등 노트는 글자를 쓰는 노트가 아니라 글자를 읽는 노트인가요. 아니면 지우는 것이 써지는 노트인가요. 슬픔을 튕겨 올리는 앙상한 스프링의 탄력.
사람들 등이 슬퍼 보이는 것은 책이 아니라 마음 글씨 잘 써지는 노트여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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