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형 중심 가격 상승 금융위기 前 수준 회복세'전세 수요 매매 전환' 정부 기대 어긋나
회사원 김성민(39)씨는 지난 달 용인 풍덕천동의 소형(69㎡) 주공 아파트를 사려다 발길을 돌렸다. 전세로 사는 서울 구의동 빌라의 집주인이 보증금을 1억2,000만원에서 무려 4,000만원이나 올리자 김씨는 그럴 바엔 차라리 대출을 끼더라도 수도권에 집을 사는 게 낫겠다고 판단, 전에 눈 여겨 봐뒀던 용인의 2억원짜리 아파트를 알아보러 나선 것. 하지만 계획은 여기까지. 아파트값은 어느새 2억3,000만원 선으로 올라 있었다. 김씨는 "2억 정도면 어떻게든 돈을 맞춰보겠지만 지금 시세로는 무리라 다른 전셋집을 알아보고 있다"며 "앞으로 집값도 오른다던데 갈수록 무주택 신세에서 벗어나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며 불안해했다.
치솟는 전셋값에 내몰린 상황에서 세입자들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은 크게 3가지. ▦달라는 대로 올려주고 살던 집에 살거나 ▦자금 사정에 맞춰 전셋집을 옮기는 경우 ▦이렇게 전세에 시달리느니 어떻게든 목돈을 끌어와 이 참에 내 집을 장만하는 것. 가진 돈에 맞춰 지금 보다 한 곳으로 전세를 옮기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셋값을 원하는 대로 올려주는 것이나, 차라리 집을 사겠다는 쪽은 자금여력이 그래도 나은 편이다.
정부는 세 번째 선택, 즉 매매가 전세난을 풀어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전세값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면, 전세와 매매 사이에서 고민하던 사람들이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사게 될 것이고 이렇게 되면 전세값 폭등세에 어느 정도는 제동이 걸릴 것이란 얘기다. 이른바 '전세수요의 매매전환'논리다.
하지만 이젠 이 조차도 어려워지고 있다. 이미 집값 자체가 너무 뛰었기 때문이다. 서울ㆍ수도권 대부분 단지가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 닥친 2008년 하반기 이전 수준까지 올라 왔거나 이미 훌쩍 넘어선 실정이다.
13일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번지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전 3.3㎡ 당 1,846만원이던 서울지역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는 그 해 말 1,779만원으로 떨어진 뒤 꾸준히 올라 지난 주 현재 1,830만원까지 회복했다. 실제로 서울 봉천동의 P아파트 79㎡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8년 6월 시세가 3억1,000만~3억6,000만원 선이었는데, 올 초까지 3억3,500만원선을 유지하다 최근 3억5,000만원까지 오르며 시세를 완전 회복했다. 성북구 길음뉴타운 79㎡ 아파트는 2008년말 시세(3억3,000만원)보다 오히려 3,000만원 상승한 3억6,000만원까지 호가하고 있다.
길음동 현대공인 관계자는 "최근 성사된 거래는 급매물 위주로 갈아타려는 수요자들이 유입된 것이 대부분이지, 전셋값 때문에 차라리 집을 샀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며 "특히 서울은 시장침체로 집값이 좀 빠졌다고는 하나 중소형을 중심으로 가격이 빨리 회복돼, 전세 대신 내 집 장만을 하기엔 여전히 부담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의 경우, 서울만큼은 아니지만 글로벌 위기 이전수준에 거의 근접해 있다. 분당 일산 등 5개 신도시는 위기 직전 1,497만원이던 평균 시세가 위기 직후 1,387만원까지 하락한 뒤 서서히 오르면서 지금은 1,356만원선에 달한다. 신도시를 뺀 나머지 경기지역도 3.3㎡ 당 972만원에서 지난해 말 910만원까지 떨어졌지만 최근 두 달 사이 회복세를 보이며 915만원까지 올랐다.
때문에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연스런 매매수요 전환이 전세값을 잡아주지는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오히려 집값이 과거 부동산광풍(狂風)이 불었던 2006~2007년 수준을 향해 달려감으로써, 매매-전세 동반상승의 악순환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용인 성복동의 박현복 공인중개사는 "기존에 아주 비싼 전셋집 살던 사람이나, 수도권 외곽에 사는(買) 경우를 제외하면 최근 거래에서 전세수요가 매매로 전환한 사례는 드물 것"이라며 "특히 중소형의 경우 전세도 매매도 모두 올라 부담스런 가격"이라고 말했다.
전태훤기자 besa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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