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공정거래법의 효시인 미국의 셔먼법은 주로 노동조합을 억압하는 데 쓰였다. 노동조합이 노동 공급 독점을 위한 카르텔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것은 옳은 견해가 아니다. 사용자와 개별 노동자 간에 '교섭력' 차이가 있다는 것은 '시장경제론'의 원조인 애덤 스미스 때부터 인식된 사실이다. 노동조합은 그런 차이를 메워주는 장치다. 미국에서도 그런 견해는 나중에 클레이턴법에서 수정되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예방해야
지금 한국에서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노동조합이 아니라 대-중소기업 간의 하도급을 둘러싼 논란이 그것이다. 일각에서는 중소기업단체에 납품단가 협상권을 주자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 시장경제론자들은 그것이 중소기업에 카르텔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반대하고 있다.
납품단가 협상권 부여가 카르텔 허용이 아닌 것은 노동조합의 경우와 마찬가지다. 하도급 업체는 투자를 하고 나면 원청 대기업 이외에는 제품 판매가 불가능하다. 즉 자산의 '특정성(specificity)'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특정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익을 누가 갖는가는 시장이 아니라 교섭력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대기업이 그런 이익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납품단가 협상권은 그렇게 터무니없이 기울어진 교섭력을 교정해 주자는 것이다.
납품단가 협상권을 주는 것이 중소기업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도 있다. 대기업이 바보가 아닌 한 부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해외로 조달선을 옮겨서 대응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소기업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협상권이 주어지더라도 대기업이 부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해외로 조달선을 대거 옮길 정도까지 가격을 올릴 리는 없는 것이다. 대기업이 그렇게 대응할 가능성은 납품단가 협상권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협상권을 주어도 별 문제가 없다고 볼 근거가 될 수 있다.
지난 11일 국회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할 경우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할 수 있도록 하도급법을 개정했다. 싸움판인 국회가 모처럼 할 일을 한 셈이다. 그러나 납품단가 협상권은 2년동안 '협상 신청권'을 준 뒤 다시 판단하기로 했다.
몇 단계에 걸쳐 복잡하게 얽힌 현행 하도급체계 하에서 중소기업단체에 협상권을 주면 1987년 이후의 노사관계 정상화 과정에서처럼 온갖 혼선과 갈등이 생길 수 있다. 그런 것을 막기 위해 유예기간을 두겠다는 것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중소기업이 협상 신청권만으로 실질적인 교섭력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의 국회의 행태로 보아 2년 뒤 논의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유예기간을 두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협상권을 부여하도록 명문화하는 것이 맞다. 그런 목적으로 '로드 맵'을 짜는 역할을 동반성장위원회에 맡겨 보는 것은 어떨까. '초과이익 공유제' 같은 것을 불쑥 내놓아서 논란을 빚기보다는 좀 더 장기적 관점에서 하나라도 제대로 된 해결책을 내게 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동반성장위는 이런 거나 하지
시장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에는 시장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도 있다. 그런 영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교섭은 시장만큼 간단한 해결책을 못 내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한국이 1987년 이후 노사관계 자유화에서 겪은 수많은 갈등과 혼란을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렇다고 노동조합의 존재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하도급 문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시장의 힘은 그것이 모든 영역의 만병통치약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참여 주체들이 무리하게 행동하지 못하게 규율하는 장치라는 데 있다. 시장경제론의 원조가 알았던 것을 현대 시장경제론자들이 몰라서는 곤란할 것 같다.
이제민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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