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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가가 업신여김을 당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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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국가가 업신여김을 당할 때

입력
2011.03.13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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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수교 3년이던 1995년 봄 한국일보 기자 10명이 약 2개월 동안 중국 전역을 돌며 현장 취재를 했다. '중국 리포트'라는 이름 아래 보도된 대규모 기획이었다.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중국 곳곳을 취재하면서 가는 곳마다 마주치는 사안마다 경이로움을 느끼며, 중국의 미래는 무서우리라는 막연한 예감을 했다. 16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취재 과정에서 들었던 많은 이야기들 가운데 두 가지는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한 가지는 진시황 병마용갱 취재를 가서 진시황릉 발굴에 소요되는 기간을 얼마로 잡고 있느냐고 묻자 발굴책임자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했던 말이다. "100년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 중국인의 시간 개념은 만만디라고 비아냥을 듣기도 하지만, 100년이라는 타임 스케줄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하는 그들로부터 받은 놀라움은 컸다. 다른 한 가지는 당시 취재단을 안내했던 전 런민르바오 기자가 한 말이다. 중국은 자국 내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조선족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것, 그 이유는 조선족이 교육열이 가장 높은 민족이면서 중국의 바깥에 국가 형태의 정치체제를 수립한 유일한 민족이기 때문이라는 것, 더구나 현실적으로 그 국가가 하나도 아닌 두 개나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엽기" 비웃음 산 상하이 스캔들

상하이 주재 한국 영사들과 33세의 중국 여성 덩신밍(鄧新明)이 얽힌 사건인 이른바 '상하이 스캔들'을 보면서, 전 런민르바오 기자의 이 말이 떠오르며 낯이 화끈거리는 걸 어쩔 수 없었다. 과연 우리는 그의 말대로 중국이 두려워하는 민족이며 국가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로 중국에, 세계 곳곳에 나가 있는 외교관들이 오히려 한국을 업신여김을 당하는 국가로 전락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들은 상하이 스캔들을 국가기밀 유출이라는 면에서 접근하며 덩 여인에게 '중국판 마타하리', 이번 사건에는 중국 여자스파이를 다룬 영화 제목을 따서 '한국판 색ㆍ계'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사건 공론화 일주일이 됐고 총리실과 외교부, 법무부 등 관련 부처의 자체 조사에 이어 정부 합동조사단까지 구성됐지만 과연 이미 알려진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전화번호 외에 어떤 기밀이 누출됐는지, 사건의 정확한 실체는 무엇인지 등은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덩 여인은 물론 그와 관련된 핵심 인물인 전 법무부 소속 H 영사의 소재 파악도 안 된 상태다. 13일 상하이 현지로 출발한 정부 합조단은 아예 덩 여인 조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중국 언론 등은 그러나 이번 스캔들을 스파이 사건으로 보는 시각을 "엽기"라고 치부하며, 한국 외교관들과 덩 여인의 개인적 치정 사건으로 단정하는 분위기다. 엽기는 엽기다. 외교관이라는 이들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정체불명의 여인과 얼굴을 맞대고 찍은 사진 여러 장이 공개됐고 심지어 한 영사가 이 여인과 맨발을 드러내놓고 찍은 보기 민망한 사진에다, 또 다른 영사가 협박에 못이겨 썼다는 '제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제 손가락 하나를 잘라 드리겠습니다'라는 서약서까지 공개됐다.

잇단 국가망신, 덮고 가선 안돼

중국 공안 당국은 자국 여인 덩에 대한 이런저런 의혹을 이미 조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 정부 합조단이 철저하게 기밀 유출 의혹 등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상하이 스캔들은 그야말로 한국 영사들과 그들을 통해 이권을 노린 한 중국 여인의 치정극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상하이 영사들은 16년 전 중국이 두려워했던 한국이라는 나라를 이제는 한없이 업수이 여기게 만든 장본인들로 세계외교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것이다.

국가망신을 시킨 일은 최근에 또 있었다. 국정원 개입 의혹이 일었던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 침입 사건이다. 국정원은 NCND(긍정도 부정도 않음) 원칙을 거론하며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고, 경찰 수사는 도무지 진척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하이 스캔들이나 인니 특사단 사건 등 국민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이 잇따르는 것이 정권 말기 현상 아니냐고 보는 해석도 타당하지만, 그런 정치적 시각은 오히려 문제의 원인 규명을 흐리게 만들 위험성도 있다. 외교나 정보는 정권 차원 이상의, 국가의 능력과 존엄이 걸린, 어물쩍 덮고 가기에는 훨씬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종오 사회부장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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