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라는 만화영화를 무척 좋아했었다. 신세대는 몇 년 전 상영되었던 영화 가 아닌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일본 만화영화가 원작인 가 등장한 것은 1960년대 중반 무렵이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지만, '바다의 왕자 마린보이, 푸른 바다 밑에서 잘도 싸우는 슬기롭고 용감한 마린보이 소년은 우리 편이다. 착하고 아름다운 인어아가씨야, 마음씨 고운 흰 고래야, 정말 고맙다.'라는 주제가는 아직도 또렷이 생각난다.
기억이 정확하다면 마린보이는 산소 껌을 씹으면서 물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숨쉬며, 종횡무진 바다 속을 누볐다. 당시 사람들이 생각하는 물속은 기피해야 할 대상 1호였다. 새해 운수를 점쳐보는 토정비결에는 1년 열두 달 중 꼭 한 달은 '물가는 위험하니 가지 마라'는 내용이 있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강가나 바닷가에는 얼씬도 하지 못하게 말렸다. 육상에서 생활하는 인간은 허파로 공기 호흡을 하니, 물속에서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마린보이가 우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요즘은 '스쿠버(SCUBA)'라 불리는 자동 수중호흡장치가 있어 한정된 시간이나마 다이빙을 즐길 수 있기는 하지만.
얼마 전 신문에 한국기계연구원이 인공아가미를 발명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산소통 없이도 물속에서 호흡할 수 있는 '생체모방형 산소호흡장치'를 개발해 특허를 출원했다는 것. 인공아가미라니 과학소설(SF)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사람이 물고기처럼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다니 말이다. 인공아가미는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용존산소)로부터 산소 기체를 추출해 허파호흡을 하는 생물도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한 장치이다. 추출된 산소는 미세한 구멍으로 기체를 여과할 수 있는 화학섬유 다발을 거쳐 마스크에 공급된다. 인공아가미가 실용화되면 바다에서 조난사고로 인명을 잃는 일은 없을 것이다. 물고기처럼 자유자재로 헤엄치며 수중경관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인공아가미 개발은 이스라엘에서 2000년대 들어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 기술의 핵심은 원심분리기를 이용해 장치의 중앙부에 낮은 압력을 만들고, 이곳으로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가 기체로 추출되도록 한 것이다. 이 장비의 이름은 '물고기처럼(Like-A-Fish)'이다. 일반적으로 물속에 녹아 있는 산소의 양이 많지 않으므로, 호흡하기에 충분한 산소를 추출하려면 많은 물이 필요하다.
인공아가미의 펌프는 짧은 시간에 많은 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강력해야 하고, 펌프를 작동시키는 배터리는 수명이 길어야 한다. 아직은 다이버들이 물속에서 호흡하기 위해 사용하는 스쿠버 장비에 비해 불편한 점이 많고 개선해야 될 점도 많다. 그러나 앞으로 사용하기 편리한 인공아가미가 만들어지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지구상의 생명체는 바다로부터 태어나 육지로 진화해왔다. 그러나 바다에 사는 포유류인 고래는 육지생활을 하다가 생명의 고향인 바다로 돌아가 적응하였다. 물속에 살지만 물 위로 올라와 허파로 호흡해야 하는 육지생활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자궁 속 양수에서 자라는 인간의 태아는 발달과정 중에 어류의 아가미와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인간도 향후 바다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진화할지 모른다. 설령 그렇다 해도 아주 먼 미래의 일이겠지만.
그러나 인공아가미의 실용화는 그리 먼 후의 일이 아니다. 곧 물속에서 자유롭게 생활하는 물고기를 더 이상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김웅서 한국해양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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