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재앙이 국제금융시장에까지 재앙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큰 재해가 터지면 그 나라 통화가치가 급락하는 게 일반적인데 일본 엔화는 오히려 강세를 보이고, 뉴욕 증시가 상승 마감하는 등 오히려 시장에선 예상 밖의 상황이 전개되기도 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재난의 역설'이라고 평했는데, 아직까지는 시장 역시 이번 지진 참사가 경제적으로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확신하지 못한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일본 대지진 후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엔화 강세'라는 역설적 반응이 나왔다. 11일(현지시간) 뉴욕 외환시장에서 엔ㆍ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27엔이나 급락한 81.77엔로 마감했다. 이날 절상 폭은 8개월 이래 최대다.
엔화의 역설적 움직임에 대한 해석 중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해외에 투자된 일본 자금의 복귀설이다. 글로벌 온라인 외환거래업체인 포렉스닷컴의 캐슬린 브룩스는 "이번 강진에 따른 피해자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피해 복구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금융기관이 해외 투자 자산을 매각해 대규모 엔화가 일본 내로 환수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실제로 이런 일은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 때도 발생했다. 염상훈 SK증권 애널리스트는 "당시에도 10조엔에 가까운 피해가 발생했지만, 엔화는 강세를 이어가며 엔ㆍ달러 환율은 사상 최저치인 79엔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엔화 강세를 '안전자산 선호'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기도 한다. 엔화는 다른 통화와 달리 안전자산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일본 대지진으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 조짐을 보이자, 엔화가치가 상승했다는 논리다.
글로벌 증시도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망이 우세하다. 아담 메시 트레이딩 그룹의 수석 전략가인 토드 호르비츠는 "일본 대지진이 글로벌 증시에 공포와 불확실성을 야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는 결국 복구되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진이 발생한 당일인 11일 아시아와 유럽 증시가 일제히 약세를 보였지만, 가장 나중에 개장한 미국 증시는 일본의 대규모 복구 수혜를 입을 수 있다는 역설적 전망 덕에 상승 마감했다.
국제유가도 일본 대지진의 영향으로 11일 큰 폭으로 떨어졌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분노의 날' 시위가 조용히 끝나면서 공급 불안 우려가 급격히 줄어든 상황에서, 이번 사태로 일본 경제의 원유 수입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상승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태 추이에 따라 예기치 않은 동요가 나타날 수도 있다는 신중론은 여전하다. 특히, 원전 사고가 예상보다 길어져 일본 정부가 대체 전력생산을 위해 원유나 석탄 수입을 늘릴 경우 상황은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한 관계자는 "중동지역의 불안이 지속되고, 이를 활용하려는 국제 투기세력의 움직임도 여전한 상황에서 일본에서 원유 수요가 늘어날 경우 국제 유가는 또다시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대지진 사태로 일본 경제의 경쟁력이 하락할 경우 장기적으로 엔화 가치는 하락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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