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와트짜리 4개로 사용하는 전원 공급장치를 3개로 줄여 보면 어떨까요. 이를 통해 경쟁사 제품과 차별화 포인트를 만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기존 장비들과 차별화할 수 있어 좋기는 한데...그래도 시스템 운영에 문제가 없는지 소자 부품 설계 단계에서부터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진지해 보였다. 분위기는 부드러웠지만, 변재응 책임, 조규남 수석 등 두 연구원이 주고 받은 대화 속엔 긴장감이 역력했다. 15일 찾아간 서울 가락본동 유비쿼스 본사 개발실은 저전력 친환경 기술 에 대한 연구로 긴박하게 돌아갔다.
2000년 데이터 네트워크 장비 관련 중소 벤처로 문을 연 유비쿼스는 지난해 말 국내 중대형 인터넷 교환기 시장에 처음으로 순수 국산 장비 상용화에 성공한 업체. 유비쿼스가 내놓은 인터넷 교환기는 초당 400기가바이트(GB)의 데이터 처리가 가능한 장비로, 최대 50만명의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3차원(3D) 영화 2,000개 채널을 동시에 시청할 수 있게 해준다.
유비쿼스가 토종 업체로 장비 상용화에 성공했지만 외산 업체들이 사실상 장악한 중대형 인터넷 교환기 시장 진출에는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중대형 인터넷 교환기 개발은 돈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소형 장비하고는 달라요. 실제 장비 실험을 할 때에도 많은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상용화했을 때와 똑같은 환경에서 테스트가 이뤄져야 하거든요. 개발 욕심은 있지만 중소 업체들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이유죠." 이상근(51) 유비쿼스 사장은 중소 업체의 감당하기 힘든 장비 개발 환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 사장이 3년전 개발에 뛰어들었을 당시엔 중대형 인터넷 교환기 시장의 절대 강자인 시스코와 주니퍼 등 글로벌 업체들을 넘어 실구매자를 확보해야 한다는 것도 걸림돌이었다. 장비 상용화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시스코와 주니퍼 등 기존 업체들의 막강한 유통망을 뚫을 수 있을 것이란 보장이 없었던 셈이다.
"외산 업체들이 경쟁자가 없는 상태에서 워낙 오랫동안 국내 인터넷 교환기 시장을 독점해 왔어요. 고객들과 외산 업체들의 오랜 파트너 관계를 넘어서기엔 중소 기업들의 유통망이나 자금력이 많이 부족한 게 현실입니다."
이 같은 현실 때문에 유비쿼스의 중대형 인터넷 교환기 개발 성공이 대기업과의 상생에서 시작될 것이라고는 이 대표 자신도 전혀 예상치 못했다. 이 대표는 2007년 말께 장비 개발 포기 결정을 포기하려 했다.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유비쿼스의 데이터 네트워크 기술 잠재력을 높이 평가한 LG유플러스에서 자금과 기술 지원은 물론, 개발될 장비의 구매까지 포함된 포괄적 전략 제휴 제안을 해 온 것이다.
"믿기지 않았죠. 장비 개발에만 수 십 억원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를 대기업에서 먼저 중소기업에게 제안한다는 것 자체가 파격적이었으니까요."
대기업과 손을 잡은 이후, 유비쿼스의 장비 개발 작업도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중소 기업에겐 인색하기로 소문난 미국 반도체 업체는 대기업과 제휴를 맺었다는 소식에 유비쿼스에게 인터넷 교환기의 핵심 칩과 관리 인력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특히 중대형 인터넷 교환기 개발 프로젝트 착수 발표는 한 때 가망이 없다는 생각에 회사를 떠나려했던 주요 엔지니어까지 돌려 세웠다. 이 대표는 "불가능에 가까웠던 기술 도전이 엔지니어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 같다"며 "그들이 없었다면 교환기 개발도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50여명의 전담 인력이 100여평의 개발실에서 밤잠을 쫓아가며 연구에만 매달리기를 1년 반. 지난해7월 유비쿼스는 우수한 성능의 인터넷 교환기를 외산 업체 제품 보다 약 30%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했다. 덕분에 이 시장에서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외산 장비 수입 대체 효과까지 얻을 수 있게 됐다.
유비쿼스는 이 개발 장비에 힘입어 불황이지만 매출 목표도 지난해(800억원) 보다 높게 책정해 놓고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지만, 유비쿼스의 도전은 이제 시작이다. "이제 겨우 걸음마를 시작했어요. 한국 중소 기업도 세계 속에서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 줄 겁니다." 이 사장의 얼굴에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글ㆍ사진=허재경 기자 ric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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