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중국 옌볜에 거주하는 재중동포 3세다. 중국이 활동 기반이지만 그의 이름은 국내 독립영화계에서 더 굵고 뚜렷하다. 2001년 '11세'로 데뷔해 '당시' '망종' 등을 거치며 독립영화계 주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 고통스러운 현실과 인간의 본성을 묵묵히 들여다보는 카메라가 그의 인장이다.
마음 불편한 내용들을 폭발력 가득한 화면에 담아온 장률(50) 감독이 8번째 장편 '두만강'의 개봉(17일)을 앞두고 있다. '두만강'은 두만강 변에 위치한 조선족 마을을 배경으로 조선족 소년과 탈북 소년의 우정과 갈등을 그린다. 탈북자들의 안타까운 사연, 탈북자를 껴안다 그들을 고발까지 해야 하는 조선족의 고단한 현실이 담겨있다. 현재진행형의 처절한 역사를 차분하게 담아내 더욱 가슴을 누르는 영화다. 묵묵히 사물을 지켜보며 감정을 쌓아가다 기어이 이를 폭발시키는 장 감독의 재능이 돋보인다.
장 감독은 "2000년대 초반부터 관심을 가졌던 내용이다. 옌볜 출신이다 보니 (탈북자에 대해) 보고 듣는 게 있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따스하고 웃기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옌볜과 탈북자의)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고도 덧붙였다. "내가 아는 것을 찍어야지 모르는 것은 못 찍는 것 아니냐"고 반문도 했다.
그의 전작들이 그렇듯 연극 무대 경험이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 일반인을 주연 등 주요배우로 캐스팅했다. 그는 "내가 영화 공부를 따로 하지 않아 그런지 연기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영화라면 다들 좋아하고 어른들도 호기심을 나타내니 캐스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사는 모양대로, 원래 말하는 대로 연기 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옌볜대학 중문과 교수를 거쳐 소설을 쓰다 감독이 됐다. 흔치 않은 이력을 살아온 그는 "교수든 소설가든 감독이든 솔직히 다 마음에 안 든다. 그게 그거다"고 말했다. "감독하다 재미 없으면 언제든 떠날 준비가 돼 있다. 아까 오다 본 호떡장사가 재미있어 보이던데 다음에 한번 해봐도 좋을 듯하다"고도 했다. 그는 "직업은 아무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안에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다. 음악도, 시도, 영화도 좋지만 그저 매체에 불과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여느 예술영화 감독처럼 롱 테이크(오래 찍기)와 롱 숏(멀리 찍기)을 애용하면서도 정작 "그 미학적 의미를 알고 영화를 시작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감독이 되기 전 본 영화도 할리우드 영화밖에 없었다"고 회고했다. "영화는 사람의 말투와 똑 같다. 롱 테이크가 내 말하는 습관과 비슷한가 보다. 촬영 과정에선 특정 공간의 사람들 행동과 말투가 영화 형식에 영향을 준다. 옌볜 사람과 서울 사람은 걸음 빠르기부터 다르지 않나. 영화는 공간의 정서를 담아야 한다."
라제기 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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