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관리 자격증이요? 그런 거 없는데요. 소방교육도 받은 적 없는데요."
11일 새벽 2시30분 서울 양천구의 G 셀프주유소.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20대 초반의 아르바이트 직원은 "처음 3일간 사장님한테서 소화기 위치, 주유기 작동법, 손님 응대법 정도를 배운 게 전부"라고 말했다. 그가 이곳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지난 6일. 이 주유소는 위험물취급기능사' 등 자격증을 가진 정직원들은 모두 퇴근하고 기름 냄새를 맡은 지 닷새밖에 되지 않은 신참에게 모든 것을 맡겨두고 있었다. 졸린 눈을 비비던 그는 잠을 깨기 위해 밖으로 나가더니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치솟는 유가에 덩달아 인기를 끌고 있는 셀프주유소 상당수가 안전관리에 무방비 상태다. 특히 심야 시간대는 위험천만하다. 은평구의 또 다른 셀프주유소는 오후 10시 이후 승용차들이 줄을 잇고 있었지만 심지어 아르바이트생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연히 법적으로도 위반이지만 행정당국의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셀프주유소 안전관리를 규정한 위험물 안전관리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관할소방서에 신고된 위험물 안전관리자나 이를 대리할 수 있는 사람이 고객이 주유하거나 용기에 옮겨 담는 작업을 모니터 등을 통해 지켜봐야 한다. 대리인도 위험물 관련 자격취득자나 소방안전협회에서 일정시간(3일 24시간) 안전관리교육을 이수한자, 전직 소방공무원으로 자격이 정해져 있지만 이를 지키는 셀프주유소는 많지 않다. 실제로 한국일보가 서울 양천 은평 서대문 마포 중랑구 등 서울시내 5개 구에 자리 잡은 셀프주유소 14곳의 야간 근무형태를 파악한 결과 아르바이트생이 혼자 근무하거나 무인으로 운영되는 곳이 6곳이나 됐다.
셀프주유소의 안전부재는 국내 차량소유자들이 셀프주유에 익숙하지 않은 실정에서 자칫 크고
작은 사고로 이어질 우려가 적지 않다. 셀프주유소가 일반화한 미국의 경우 손님이 주유기를 뽑지 않은 채 그대로 시동을 걸어 가거나 주유기 쪽에 제대로 주차를 하지 않은 손님이 억지로 주유기를 잡아 당기는 등 위험천만한 일이 심심찮게 벌어진다. 셀프주유소를 자주 이용하는 김갑수(44ㆍ경기 고양시)씨는 "관련지식이 전혀 없는 직원이 상주하다 자칫 안전사고라도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할 지 의문"이라며 "특히 무인주유소는 '나 몰라라'하는 격 아니냐"고 지적했다.
더욱이 범죄자가 악용할 우려가 높아지는 현실과 달리 이를 예방할 최소한의 안전판도 없다. 범죄의지를 지닌 손님이 별도 용기에 기름을 담아가 방화 등에 이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신상정보를 적도록 의무화하는 등 법적 안전규정도 없는 실정이다. 한 셀프주유소 아르바이트생(24)은 "회사 자체 규정으로 별도용기를 가져온 구매자의 개인신상을 적도록 하고 있지만 꼭 이를 지키는 직원은 없다"고 털어놓았다.
경원대 소방학과 최돈묵 교수는"아직 셀프주유소가 일반화하지 않아 업주와 직원들의 안전의식이 약한 편"이라며 "작업장 내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정부가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3년 국내에 처음 생긴 셀프주유소는 현재 서울에만 36곳, 전국적으로는 330여곳에서 성업 중이며 휘발유 기준으로 일반 주유소보다 리터당 70~120원 싸다.
김현수 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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