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하도급법 개정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중소기업(하청업체)의 유망 기술을 유용하거나 가로채는 대기업(하청을 준 원사업자)에 대해 실제 발생한 피해액의 3배까지 보상토록 한 게 골자다. 기술 유용 과정에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책임도 대기업에 부과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수년 전부터 중소기업계와 시민단체들이 도입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재벌 기업과 일부 경제관료들이 반(反)시장적이고 실손해액 배상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 현행 민법체계와 어긋난다는 이유로 반대해 진전이 없었다. 다행히 동반성장의 필요성을 인식한 여야 정치권의 전격 합의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함으로써 갈수록 교묘해지는 대기업의 기술 가로채기를 차단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동반성장을 저해하는 근본적인 문제는 우월적 지위를 악용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 행위다. 일방적인 납품단가 인하나 어음 거래, 계약서 없는 구두 주문도 문제이지만, 핵심기술 가로채기야말로 중소기업의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 암적 요인이다. 공정거래위가 2009년 중소기업 204곳을 대상으로 하도급 실태를 조사한 결과, 대기업의 기술 탈취나 유용을 당했다는 응답이 22.1%(45곳)나 됐다.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 규모는 업체 당 평균 19억3,000만원이었다.
중소기업이 힘들게 개발한 신기술을 빼앗는 것은 강도나 다름 없는 범죄행위지만, 적발되더라도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등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근절이 어려웠다. 대기업 눈치를 봐야 하는 중소기업으로서는 소송을 내기도 어렵거니와, 소송을 제기해도 법원이 정해주는 배상액이 턱없이 적어 실익이 거의 없었다.
때문에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은 대기업의 기술 탈취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개정안 통과를 계기로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다른 불공정 행위까지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 바란다. 미국 등 선진국들이 모든 경쟁법 위반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운영하는 점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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