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 그리피스 지음ㆍ전소영 옮김
알마 발행ㆍ672쪽ㆍ2만8,000원
"이 여행은 길을 잃으면서 시작되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깊은 우울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는 한 인류학자에게서 페루에 와 주술사들을 만나 보라는 초대를 받고는 홀연히 페루로 향했다. 아마존을 헤치고 찾아간 주술사는 그들 사이엔 묘약으로 통하는 강한 환각성 약물 아야와스카를 권했다. "독미나리를 마시듯 말할 수 없이 역겹고, 별을 마시듯 눈부시게 놀라웠"던 약물은 여러 달 그를 짓눌렀던 우울을 말끔히 씻어 주었고, 그는 그렇게 야생의 자연에 젖어 들었다.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는 영국의 논픽션작가인 저자가 야생의 자연에 이끌려 아마존숲과 안데스산맥, 북미의 에스키모 거주지, 북극의 빙하, 호주의 모래사막, 웨스트파푸아의 벌거숭이산, 외몽골의 외딴 사원 등을 7년간 방랑하며 보고 느끼고 사유한 것들에 관한 기록이다. 땅,>
고대 그리스 땅의 네 가지 원소에 얼음을 더해 여행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저자는 원시의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 땅에 발 딛고 사는 이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이 땅은 잡담하지 않는다. 말다툼을 벌이지도 않는다. 이 땅은 요구하고 선언할 뿐,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중략) 여기 최북방 지점에서의 붉은색은 적포도주나 장미처럼 농담이 있는 남방의 붉은색과 다투지 않는다. 오직 피색만이 존재한다"('야생의 얼음_빙하' 편 중). 자연에 대한 호들갑스런 찬미나 우월감을 감춘 이(異)문화에 대한 감탄과는 거리가 먼 글들은 여행기라기보다는 구도(求道)의 기록에 가깝다.
강물처럼 깊게, 그리고 묵직하게 흐르던 글들이 때로는 격랑의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는데 원시의 자연, 원시부족의 삶터에서 소위 문명인들이 벌인 난장을 대할 때 파고는 최고조를 이룬다. 야생성에 이끌리는 감정,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향한 충동이며 따라서 정치적이라고 믿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대목인 듯하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진영만이 존재한다. 불모지의 대리인과 야생의 자연을 사랑하는 자, 생명을 구하는 진영과 생명을 짓밟는 진영이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진영을 선택해야 한다."
600쪽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여행기에 필수부록처럼 따르는 사진 한 컷 없다. 영국에서 명문장가로 꼽힌다는 저자의 매력적 글 솜씨는 번역 문장을 통해서도 전해지지만 감탄과 감동보다는 사유의 오솔길로 안내하는 펜의 궤적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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