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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사진도 없이 묵직하게 그려낸 야생 방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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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 사진도 없이 묵직하게 그려낸 야생 방랑기

입력
2011.03.11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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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 그리피스 지음ㆍ전소영 옮김

알마 발행ㆍ672쪽ㆍ2만8,000원

"이 여행은 길을 잃으면서 시작되었다." 까닭을 알 수 없는 깊은 우울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는 한 인류학자에게서 페루에 와 주술사들을 만나 보라는 초대를 받고는 홀연히 페루로 향했다. 아마존을 헤치고 찾아간 주술사는 그들 사이엔 묘약으로 통하는 강한 환각성 약물 아야와스카를 권했다. "독미나리를 마시듯 말할 수 없이 역겹고, 별을 마시듯 눈부시게 놀라웠"던 약물은 여러 달 그를 짓눌렀던 우울을 말끔히 씻어 주었고, 그는 그렇게 야생의 자연에 젖어 들었다.

<땅, 물, 불, 바람과 얼음의 여행자> 는 영국의 논픽션작가인 저자가 야생의 자연에 이끌려 아마존숲과 안데스산맥, 북미의 에스키모 거주지, 북극의 빙하, 호주의 모래사막, 웨스트파푸아의 벌거숭이산, 외몽골의 외딴 사원 등을 7년간 방랑하며 보고 느끼고 사유한 것들에 관한 기록이다.

고대 그리스 땅의 네 가지 원소에 얼음을 더해 여행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저자는 원시의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그 땅에 발 딛고 사는 이들의 삶에 귀를 기울인다. "이 땅은 잡담하지 않는다. 말다툼을 벌이지도 않는다. 이 땅은 요구하고 선언할 뿐, 절대 사과하지 않는다.(중략) 여기 최북방 지점에서의 붉은색은 적포도주나 장미처럼 농담이 있는 남방의 붉은색과 다투지 않는다. 오직 피색만이 존재한다"('야생의 얼음_빙하' 편 중). 자연에 대한 호들갑스런 찬미나 우월감을 감춘 이(異)문화에 대한 감탄과는 거리가 먼 글들은 여행기라기보다는 구도(求道)의 기록에 가깝다.

강물처럼 깊게, 그리고 묵직하게 흐르던 글들이 때로는 격랑의 파도에 휩쓸리기도 하는데 원시의 자연, 원시부족의 삶터에서 소위 문명인들이 벌인 난장을 대할 때 파고는 최고조를 이룬다. 야생성에 이끌리는 감정, 그것은 본질적으로 자유를 향한 충동이며 따라서 정치적이라고 믿는 저자가 독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대목인 듯하다. "이 세상에는 두 가지 진영만이 존재한다. 불모지의 대리인과 야생의 자연을 사랑하는 자, 생명을 구하는 진영과 생명을 짓밟는 진영이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진영을 선택해야 한다."

600쪽 넘는 방대한 분량인데 여행기에 필수부록처럼 따르는 사진 한 컷 없다. 영국에서 명문장가로 꼽힌다는 저자의 매력적 글 솜씨는 번역 문장을 통해서도 전해지지만 감탄과 감동보다는 사유의 오솔길로 안내하는 펜의 궤적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희정기자 ja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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