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뚱이만 빼고 다 잃었다. 진짜 재앙은 내가 숨쉬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1일 오후 삽시간에 일본 동북부를 멸절시키다시피 한 쓰나미와 강진은 어쩌면 대재앙의 예고편에 불과했다.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고 악령처럼 계속 따라붙는 여진, 살아남았다고 안도할 수 없게 만드는 방사능 누출과 확산 등 그야말로 화불단행(禍不單行)이다.
넋이 나간 수만명의 피난민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진이 또 온다" "원자력발전소가 또 폭발할 수 있다"는 공포가 살아남은 자들의 등을 떠밀고 있다. 통신과 전기가 끊긴 후쿠시마(福島) 현은 밤이 되자 암흑천지로 변했고, 텅 빈 상점과 인기척 없는 거리는 시간이 멈춘 듯 을씨년스러웠다.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일본 대지진의 현장을 취재하고 있는 본보 김혜경, 남보라 기자는 지난 12일 밤 10시30분쯤 피난행렬과 반대로 도쿄에서 후쿠시마로 역행해 들어갔다. 막혀버린 고속도로를 버리고 국도로 갈아타면서, 곳곳에서 끔찍한 재앙의 현장과 맞닥뜨렸다. 13일 새벽 차창에 스며든 여명은 새날의 축복이 아니라 잊고 싶은 악몽이었다. 불 지옥, 물 지옥이란 말은 그대로 현실이었다.
차창 밖 후쿠시마 풍경은 인간이 자연 앞에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인지를 통렬하게 입증하고 있었다. 6층 높이의 건물은 허옇게 철골 뼈대를 드러낸 채 힘없이 무너져 내렸고, 5m가 넘는 가로수는 뿌리째 뽑혀 나뒹굴고 있었다.
제철소나 정유소 등 산업시설의 피해는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JFE제철소 지바지부 총무실 부과장 이와모토(37)씨는 "입사한 지 15년째이지만 이번처럼 지진 피해가 컸던 적은 없다"며 "정확한 피해 규모는 파악조차 안 된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인근의 정유회사 코스모공장의 상황은 더욱 끔찍했다. 시커먼 연기와 함께 화염에 휩싸여 있었지만 정문 맞은편의 소방차 4대는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공장 관계자는 "석유 보관탱크 17기가 모여있는 곳 중 일부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인다"며 "LPG의 경우 무리하게 불을 끄려다 더 큰 2차 피해가 우려돼 다 탈 때까지 그냥 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지진으로 인한 화재가 난 것은 처음이라고 덧붙였다.
전기, 수도 등 생활기반 시설 복구는 한가한 이야기로 들렸다. 당장 마실 물과 먹을 음식, 차량을 움직일 기름이 없었다. 식수를 사기 위해 들른 편의점 진열대에는 물은커녕 아무 것도 없었다. 점장 코이이다(31)씨는 "지진이 일어나고 1시간 후부터 사람들이 몰려와 오니기리(주먹밥)와 도시락, 물 등을 2시간 만에 싹쓸이해 갔다. 물품이 추가로 들어올지도 불확실하다. 빵 부스러기도 없다"고 말했다. 편의점 앞에는 10여명이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강진은 후쿠시마현 야부키초 지역의 도로를 갈갈이 찢어놓았다. 정전으로 신호등도 꺼져 있었다. 대부분의 주유소에는 기름을 넣으려는 차량들이 100m 넘게 줄을 서 있었지만 기름은 벌써 떨어져 '매진' '금일 휴업' 등의 글귀를 내붙인 상태였다.
가옥들의 기와는 다 흘러내려 흔적조차 없었다. 이날 오전 8시30분께 규모 4 정도의 여진이 발생, 사람들은 또 한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정신없이 취재를 하는 와중에, 기자들이 있는 곳이 방사능 노출 지역으로부터 고작 10㎞ 떨어진 지점이라는 걸 알게 됐다. "20㎞ 이상 떨어진 곳으로 대피해야 한다"는 경고가 뇌리에 맴돌았지만 망연자실해 있는 이들을 두고 쉽사리 발길을 돌릴 수는 없었다.
후쿠시마 지역신문인 '민유'가 이날 발행한 호외 1면은 '원전 2만인 피난'이란 큼지막한 제목을 달고 거리에 뿌려졌다. 원전 추가 폭발 가능성이 예고되면서 주민들은 최소한의 생필품만 챙겨 속속 피난길에 올랐다.
그들을 따라 도착한 원전에서 40㎞가량 떨어진 다무라시(市) 종합체육관에는 원전 부근의 오오쿠마마치, 도미오카 지역의 주민 1,600여명이 대피해 있었다. 이들은 가족당 지급받은 다다미 2장을 체육관 바닥에 깐 채 한뎃잠을 자며 공포에 떨고 있었다. 다무라시 주민들이 지원한 주먹밥 1개, 500㎖ 물 한 통으로 이틀을 견뎠다고 했다. 대부분 지진이 발생한 날 허겁지겁 입고 나온 옷차림 그대로였다.
일본전신전화주식회사(NTT)가 체육관 입구에 설치한 유선전화기 16대 앞에는 안부전화를 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고, 삼삼오오 모여 뉴스 속보를 시청하기도 했다. 도미오카에서 왔다는 70대 할머니는 "집안 행사로 가족들이 모여 있었는데 창문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흔들림이 심했다"며 "경황이 없어 아무것도 못 챙겨 나와 옷도 없어 힘들다"고 울먹였다. 그는 평생 크고 작은 지진을 여러 차례 겪었다고 했다. 할머니는 그러나 "말도 마, 이번처럼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야"라며 몸서리를 쳤다.
주부 토하라 유코(29)씨는 "지진 발생 전날이 아버지 제삿날이어서 가족이 모여 있었는데 갑자기 좌우로 집이 심하게 요동쳐 서 있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했다. 오오쿠마마치에 사는 사사키 요우코(63)씨는 "사고 당시 어디로 대피하라는 안내방송도 제대로 되지 않아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다 뿔뿔이 흩어졌다. 동네 주민들이 어디 있는지 모르고 있는 상태"라며 정부의 대응을 질타하기도 했다.
기자들이 후쿠시마에 닿기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인천국제공항을 떠나 시즈오카공항에 도착한 건 지난 12일 오전 10시45분쯤. 도쿄의 신주쿠까지는 신칸센을 타고 갔지만 거기서부터 곳곳의 철로가 끊어져 후쿠시마현까지는 어렵게 구한 차량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서서히 날이 저물고 후쿠시마에 밤이 찾아왔다. 언제 어떤 위험이 또 닥칠지 모르는 터라 피난민들이 내뿜는 숨은 무겁게 가라앉기만 했다. 오치와라 나나(5)양은 끝내 울음을 터트렸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요. 집에 가면 제일 먼저 라면 먹고 싶어요."
꿈도 미래도 사치, 지금 이 순간 어둠 속에 서로 보듬어 안은 가족들에겐 한 끼의 식사, 잠깐의 칼잠이 더없이 소중해 보였다. 그들은 밤 사이 방사능의 공포만이라도 사라져주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후쿠시마=김혜경기자 thanks@hk.co.kr
남보라기자 rarar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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