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화산을 찾아 나섰다. 살아있는 불의 산. 마그마의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는 산덩어리다.
1월 말 일본 남큐슈의 신모에다케(新燃岳ㆍ1,421m)에서 화산이 터져 거대한 화산재가 3,000m 상공까지 치올랐다. 지난해 유럽의 항공을 마비시켰던 아이슬랜드의 화산폭발이나, 많은 인명피해를 낳았던 인도네시아의 화산에 놀랐던 한국의 언론들은 일본의 화산폭발에 큰 관심을 쏟았다. 각 신문은 1면에 큼직한 사진으로 그 소식을 알렸고, 방송사 카메라들도 현장으로 달려가 신속히 '재앙'을 전달했다.
언론의 보도대로 주변이 온통 화산재로 뒤덮인 폐허가 됐으리라 짐작하고 있을 때 신모에다케가 있는 가고시마로의 여행을 제의 받았다. 화산 폭발의 현장을 볼 수 있는, 다시 없을 기회라 여기고 얼른 따라 나섰다. '헬멧을 준비해야 하는 건 아닐까, 마스크는 꼭 챙겨야겠지.'마음 속엔 이미 화산재 위를 걸어갈 내 자신의 모습이 그려졌다. 비장한 각오로 도착한 가고시마. 하지만 그곳엔 '재앙의 화산'은 없었다.
신모에다케를 폭발시킨 기리시마 연봉
가고시마는 일본 본토(섬으로 된 나라인 일본에선 큐슈 정도까지를 본토로 여긴다)의 제일 남쪽에 있는 현이다. 가고시마에는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인 기리시마야쿠 국립공원이 있다. 1934년 운젠, 세토나이카이 등과 동시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곳에 이번에 폭발한 화산 신모에다케가 있다. 기리시마야쿠 국립공원은 크게 기리시마연봉과 또 다른 활화산인 사쿠라지마, 그리고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야쿠시마 등으로 나뉜다.
기리시마 연봉은 '달의 공원'이란 별칭을 지닌 화산봉우리들의 집합체다. 23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 곳곳에 분화구, 화산호수가 널려있다. 이곳이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건 이색적인 풍광과 함께 일본의 건국신화를 지닌 성스러운 곳이란 이유가 있다. 기리시마 연봉 남쪽 끝의 다카치호미네(高千橞峰ㆍ1,574m)가 일본 태양신의 후손이 나라를 세우기 위해 내려왔다는 천손강림 신화의 현장이다. 강림한 그의 손자가 일본 열도의 중심으로 진출, 제1대 천황에 즉위하게 됐으니 천황의 조상이 처음 자리한 곳이 바로 이 기리시마다.
기리시마 연봉의 한가운데에 화산이 터진 신모에다케가 있고, 북쪽 끝에 연봉 중 가장 높은 가라쿠니다케(1,700m)가 있다. 한자로는 '韓國岳'이라 표기된 봉우리다. 일본인 가이드는 "언젠가 한국의 청년이 그리운 고향이 그리워 가장 높은 이 곳에 올라 눈물을 흘려 그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라 했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가들 설명은 다르다. 가라쿠니는 가야국을 뜻하는 것으로 7왕자로 대표되는 가야국의 김수로왕 후손이 이리 넘어와 세를 구축했고 그들과 연관된 이름이 산에 붙게 된 것이란다. 일본 천황의 조상이 가야국의 후손일 것이란 가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기리시마 연봉은 이렇게 일본인에게도 우리에게도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곳이다.
가라쿠니다케와 신모에다케, 다카치호미네로 이어지는 능선은 하루 일정의 종주 코스로 좋다. 일본인은 물론 한국의 산행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코스다. 하지만 지금 그 산행길은 막혔다. 신모에다케의 분화 때문이다. 화산이 안정기를 찾을 때까지 반경 4km 이내의 출입이 전면 통제됐다. 기리시마야쿠 공원에 찾아갔지만 멀리서 신모에다케 정상 위로 회색 구름이 조금씩 피어 오르는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또 다른 활화산 사쿠라지마
가고시마엔 신모에다케 말고도 활화산이 2개 더 있다. 가고시마의 정중앙에서 하루에도 서너 차례 화산재구름을 피워 올리는 사쿠라지마와 앞바다 작은 섬에 있는 미시마무라다. 사쿠라지마(1,117m)는 현에서 제일 큰 도시인 가고시마시에서 배로 불과 15분 거리에 있다. 원래는 섬이었는데 1916년 큰 화산 폭발 때 흘러내린 용암으로 육지와 연결됐다고 한다. 대도시 바로 옆에 매일 화산 연기를 내뿜는 활화산이 있는 것도 특이한 일이다. 사쿠라지마 섬 안에도 4,5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우리로선 두려운 활화산 바로 밑에 터를 잡고 사는 그들을 이해하긴 쉽지 않다. 일본인에게 화산은 그냥 함께 껴안고 가야 하는 숙명이라고 한다.
이번 신모에다케 화산이 터졌을 때 한국에선 분진과 전혀 상관없는 오사카, 도쿄 여행상품까지 취소가 쇄도했고, 먼 북쪽의 훗카이도 상품에 대한 취소 문의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당시 신모에다케보다 한국 걸그룹 카라 해체 문제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대단한 폭발이 아니다. 화산재 조금 피어 올랐을 뿐 사망자 부상자 한 명 없지 않았느냐"는 게 그들의 이야기다. "언론의 호들갑 때문에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입었다"며 불만도 드러냈다.
사쿠라지마 섬사람들은 어깨에 비듬 떨어지는 정도의 화산재가 조금 불편할 뿐, 화산의 위험에 개의치 않는? 단 혹시 모를 분화의 낙석 때문에 섬 지역 초등학교와 중학교 학생들은 반드시 헬멧을 쓰고 다니도록 한다. 사쿠라지마 섬에는 화산만큼 유명한 게 있다. 화산재를 거름으로 하는 밭에서 캔 무게 30kg을 넘는 '사쿠라 무'와 세상에서 가장 작은 '사쿠라 귤'이다.
가이몬다케와 온다케에서 바라본 가고시마
가고시마 최고의 산행코스인 기리시마 연봉 대신 다른 산을 오르기로 했다. 현에선 가이몬다케(924m)와 다카쿠마 연봉의 온다케(1,181m) 두 곳을 추천했다.
가이몬다케는 가고시마 제일 아래 나가사키바나 인근에 있는 봉우리다. 바다 옆에서 바로 솟은 고깔 모양의 산. 높이는 1,000m를 넘지 않지만 일본의 100대 명산에 드는 유명한 산이다. 후지산을 그대로 빼닮은 모습으로 '사츠마(가고시마의 옛 지명)의 후지'란 별명을 가지고 있다.
가고시마는 두 개의 반도가 깅코만을 크게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두 개의 반도가 바다를 향해 나란히 뻗어있는데 그 중 한쪽 끝이 나가사키바나 곶이고, 또 다른 끝자락이 사타미사키 곶이다. 이중 더 길게 뻗은 사타미사키 곶이 일본의 땅끝에 해당한다.
본격 등산은 2부 능선에서 시작된다. 따뜻한 남쪽이라 숲엔 초록이 짙다. 하늘을 가린 나무들로 등산로가 어둑하다. 등산로의 바닥엔 붉은 자갈들이 가득했다. 화산석인 송이다. 등산로는 원추형 산을 한 바퀴 빙 돌아가도록 놓여졌다. 길은 쉼 없는 오르막이다. 산의 중간쯤 오르자 처음 시야가 열린다. 나가사키바나가 발 아래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좀 더 올랐다. 7부 능선에서 또 한번 시야가 터진다. 조금 더 먼 대양으로 돌아나간 위치다. 나가사키바나와 깅코만이 빚어내는 풍경이 산행의 수고로움을 잊게 한다. 곶의 해변엔 마이산을 닮은 두 개의 작은 봉우리가 봉긋 솟아 뱃길을 안내하는 등대의 역할을 한다. 산 바로 아래의 드넓은 호수가 이케아호다. 현에서 가장 큰 호수로 화산재가 녹아든 물 속엔 2m가 넘는 장어가 산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사방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원추형 산꼭대기 정점에선 열도의 끝에서 맞는 큰 바다, 태평양이 기다리고 있다. 실로 장엄한 풍경이다.
이번엔 깅코만 건너편 다카쿠마 연봉중 하나인 온다케다. 5부능선의 TV송신소입구까지는 차가 오를 수 있다. TV송신소 입구에서 도시락과 물통을 챙겨 들고 산행을 시작했다. 온다케는 산행의 시작부터 너른 시야가 열린다. 발아래 산자락엔 정말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이 들어선 목장이 있다. 오렌지빛 지붕이 가고시마의 맑은 햇빛을 튕겨내고 있는 아름다운 목장이다. 산자락 밑에는 드넓은 깅코만이 찰랑거렸고, 그 바다 건너편에 아스라한 봄아지랑이 너머로 가이몬다케가 원추형 윤곽을 드러낸다.
산길은 쉽지 않다. 쇠줄을 붙잡고 올라야 할 급경사를 여러 번 만나고,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아 발이 미끄러지기 일쑤다. 그 때마다 뒤를 돌아보며 드넓게 펼쳐진 남큐슈의 장쾌한 풍광에서 위안을 얻는다. 8부 능선에선 귀한 샘물을 만난다. 푸른 숲기운을 잔뜩 머금어서인지 물맛이 유독 달았다.
샘물의 힘을 보태 마지막 고비를 넘어서자 드디어 정상이다. 가고시마 최고의 전망대란 별칭이 왜 붙었는지 알 것 같다. 저 멀리 가이몬다케까지 아우르는 깅코만의 아늑한 바다, 푸름이 넘실대는 가고시마의 넓은 들판이 내려다 보인다. 북으로 시선을 돌리면 활화산 사쿠라지마의 분화구가 내려다 보인다.
정상에 털썩 주저앉아 준비한 도시락을 꺼내 허기를 달래고 있을 때 사쿠라지마에서 분연이 뿜어져 올랐다. 산이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하며 내뱉는 거친 호흡이다. 마그마의 뜨거운 한숨이 잿빛으로 뭉실 피어 올랐다.
가고시마=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공포의 화산이 준 선물 온천, 몸 담그면 '아래'의 자유로움이…
가고시마에 동행한 한 일본전문 여행사 대표는 "온천을 즐기러 일본에 오면서 활화산을 피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그는 "활화산이 있다는 것은 바로 양질의 온천이 있음을 보증하는 것이고, 활화산은 또 그 자체로 볼거리가 충분한 관광명소다"고 했다.
일본인에게 숙명과 같은 활화산은 죽음의 공포에 대한 대가로 뜨거운 선물을 주었다. 바로 온천이다.
신모에다케가 옆에서 분연을 내뿜고 있는 기리시마 계곡은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명품 온천단지다. 일본 천황도 일부러 찾아왔다고 한다. 온천이 모여있는 계곡은 분화구에서 4km 이상 떨어져 있어 화산 분화로 인한 통제에서 자유롭다. 온천이 늘어선 마을에 들어서자 유황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깊은 계곡을 따라 난 길 옆으로 뭉실뭉실 하얀 연기가 피어 올랐다. 땅에 박은 온천공에서 올라온 연기다. 크고 작은 온천들이 계곡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곳 온천단지는 온천수의 수량이 워낙 풍부하다. 기리시마 이와사키 호텔의 경우 건물에 딸린 노천탕이 웬만한 수영장 크기다. 여러 갈래의 굵은 파이프를 통해 뜨거운 물이 계속 유입되고, 차고 넘치는 온천수는 그대로 계곡으로 흘러 내려간다.
넓은 노천탕에서 깅코만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피로를 푼 다음, 저녁식사를 할 때였다. 식사 도중 기리시마의 계곡온천 이야기가 나왔다. 오후에 몸을 담근 노천탕 말고 인근 계곡에 조성된 또 다른 노천온천이다. 숲에서 즐기는 노천욕이란 이야기에 귀가 솔깃했다.
기리시마 계곡온천에는 일본의 영웅 사카모토 료마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난해 일본에선 대하드라마 '료마전'의 내내 화제였다.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이자 일본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로 꼽히는 료마의 일대기를 그린 드라마다. 료마는 막부시대 말기의 인물이다. 근대화의 물결에 무기력한 에도막부와 지방권력들의 엉거주춤한 동거체제가 지속되던 때다. 근대화의 필요성을 자각한 료마는 지방 최대세력이면서 서로 대립하는 사츠마번과 조슈번을 중재해 동맹을 이끌어 내 메이지유신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료마 자신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암살돼 메이지 유신을 보지 못했다.
료마가 가슴에 상처를 입은 뒤 신혼여행 겸 치료를 위해 찾은 곳이 기리시마 온천이다. 기리시마 이와사키 호텔이 소유한 계곡온천에서 실제 료마가 온천욕을 했고, 지난해 드라마도 이곳에서 촬영됐다고 한다.
식사를 서둘러 마친 뒤 계곡온천으로 나섰다. 호텔측이 계곡온천에서 입을 옷을 전해준다. 그런데 옷이 이상하다. 윗도리는 문제될 게 없는데 아랫도리가 요망스럽다. 남자고 여자고 속옷을 벗고 입으라면서 줄이 달린 긴 천만 건네준다. 허리에 몇 번 감아 돌리니 무릎 위까지 내려오는 스커트의 모양이 된다. 반바지 같은 것으로 주면 좋을 것을 왜 이런 치마를 입으란 걸까. 일행 중 이곳을 경험했던 한 분이 그 이유는 물에 몸을 담가야 알 수 있다고 했다.
호텔에서 조금 떨어진 계곡온천장. 계곡의 비탈을 돌로 막아 만든 아담한 탕들에선 수증기가 피어 올랐다. 숲속에서의 온천욕이라서인지 훨씬 상쾌하다. 자연의 깊은 속살에 몸을 던져 그런가 몸에 감기는 온천수의 따뜻함이 다르다.
이곳은 혼탕이다. 물론 옷을 걸친 상태지만 혼탕이란 이름에 괜히 설렌다. 남녀가 거리낌 없이 한 탕에 들어앉았다. 사실 따지고 보면 수영장의 수영복보다 더 많이 가렸는데 괜히 낯이 붉어온다. 복장의 비밀이 풀렸다. 우리 몸 제일 안쪽의 속살이 온천수와 바로 만난다. 그냥 알몸이었을 때는 몰랐을, 스커트 속에서의 그 살랑거리는 묘한 부드러움. 이거였구나.
이 탕 저 탕을 오가다 이번엔 계곡물에 발을 디뎠다. 많이 차가울 줄 알았는데 따뜻했다. 워낙 많은 온천수가 쏟아져 들어오니 계곡물도 이렇게 따뜻해진 것이다. 호텔들이 운영하는 계곡온천은 호텔 투숙객에 한해 개방된다.
가고시마의 땅끝마을 이부스키는 모래온천으로 유명하다. 이곳 바닷가의 검은 모래 아래엔 온천수가 흘러내린다. 온천수로 달구어진 뜨거운 검은 모래를 온 몸에 덮고 찜질을 하는 게 이부스키식 모래온천이다.
한여름 백사장에서 모래찜질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 얇은 유카타 하나를 걸치고 모래 위에 누워있으면 온천 관리인이 삽으로 모래를 퍼선 몸을 덮어준다. 온몸으로 묵직한 모래 무게를 버티고 있으면 5분도 지나지 않아 이마엔 굵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숯가마에 들어앉아있는 듯 온 몸에서 땀이 솟는 게 느껴진다. 15분 정도가 적당한 시간이다. 더 누워있다가는 화상을 입을 수 있다. 모래찜질이 끝나면 모래 묻은 유카타를 입은 채 바로 옆에 마련된 온탕에 들어가 모래를 씻어낸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온탕에서 땀과 모래를 씻어내는 재미도 즐길 만하다.
이부스키의 모래온천은 특히 피부미용에 효과가 좋다. 한번 경험으로 그 매력에 빠진 여성들이 하루에도 서너 번 모래찜질장을 계속 찾아온다고 한다. 이부스키는 2004년 고 노무현 대통령과 고이즈미 전 총리가 한일 정상회담을 가진 곳이다.
가고시마=글ㆍ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가고시마에도 신칸센 개통… '에키벤' 도시락 즐기세요
가고시마 등 남큐슈 지방의 관광업 종사자들은 12일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고속철 신칸센의 남큐슈 구간이 완전 개통되는 날이기 때문이다. 후쿠오카 등 북큐슈에 집중됐던 관광객을 남쪽으로 유인할 수 있는 막강한 교통수단이 생긴 것이다.
큐슈 신칸센 루트는 후쿠오카의 하카타역을 출발해 구마모토를 지나 가고시마 중앙역으로 연결된다. 지금까지 후쿠오카-가고시마의 이동은 3시간 30분 이상 걸리는 고속도로가 맡아왔다. 신칸센은 이를 1시간 19분으로 단축시킨다.
일본의 철도 역사는 130년이 넘는다. 오랜 시간 동안 일본의 철도는 낭만의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 중 하나가 열차 도시락 '에키벤'이다. 에키벤(驛弁)은 역을 뜻하는 일본말 '에키(驛)'와 도시락을 의미하는 '벤토(弁當)'의 합성어다. 열차 역마다 특유의 '에키벤' 을 판매한다. 각 지방의 제철 식재료로 조리한 다양한 토속 별미를 반합에 담아 내놓는다. 철도 여행 중 경험할 수 있는 재미난 식도락 아이템이다.
에키벤은 1888년 주먹밥 도시락이 고우즈역에 등장한 게 시초다. 지금은 일본 열도 전역에 약 2,500여 종의 상품이 판매되는 인기 음식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일부 지역에서는 매년 에키벤 콘테스트를 열기도 한다.
후쿠오카에서 가고시마로 가는 중간의 구마모토역에서는 다양한 에키벤을 접할 수 있다. 우엉볶음밥에 족발, 생선간장조림, 고로케, 연근 겨자 등 다양한 메뉴로 준비된다. 가격은 대체로 1,000엔 안팎. 그 중 '영주님 도시락'이 유명하다. 호소가와 가문의 내력이 깃든 음식이다. 하얀 쌀밥에 검정깨와 핑크빛 우메보시가 박혀 있어 색이 곱다. 우엉, 당근, 삼치구이, 새우, 계란말이, 유부 등이 오밀조밀 예쁘게 공간을 차지한다. 그 중 연근 구멍에 노란 겨자를 넣어 익혀낸 '연근 겨자'가 별미다. 영주의 건강을 챙기기 위한 보양식으로 구마모토의 명물로 통한다.
요시마츠와역에선 큐슈지역 에키벤 콘테스트에서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카레이가와'를 맛볼 수 있다. 카레이가와는 화려하지 않다. 밥과 죽순, 표고버섯 조림, 야채 고로케가 담긴 평범한 도시락이다. 식단은 철저하게 야채위주의 건강식단이다. 싱싱한 텃밭을 밥상위로 옮겨 놓은 듯 기름지거나 느끼한 게 없다. 도시락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밥. 표고와 죽순을 잘게 다져 지은 밥이 달다. 표고와 죽순을 넣어 튀긴 감자 크로켓, 수제 보리된장을 바른 가지와 단호박 구이, 무와 당근 식초 절임, 무말랭이 조림, 가고시마 특산 붉은 고구마튀김 등이 보기 좋게 담겨 있다. 카레이가와는 조그만 시골동네의 아주머니들이 만든 '어머니표' 도시락이다. 도시락 용기는 죽순껍질로 만들어 더 운치가 있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여행수첩/ 가고시마
가고시마로 가는 방법으로 하늘길과 바닷길이 있다. 대한항공에서 주 3회(수, 금, 일요일) 가고시마를 잇는다. 뱃길은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출발 후쿠오카의 하카다 항을 연결하는 뉴카멜리아 페리를 추천한다. 저녁 7시 40분까지 승선, 저녁식사를 하고 배정된 방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다음날 오전 7시 30분 하카다항에 내린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하룻밤 숙박을 하며 배에서 크루즈 여행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페리엔 목욕탕도 갖추고 있다. 후쿠오카에서 12일 개통되는 큐슈 신칸센을 이용하면 가고시마까지 1시간 20분 안에 도착할 수 있다. 돌아오는 배편은 낮 12시 30분에 출발해 저녁 6시 부산항에 도착한다. 고려훼리 (051)466-7799
이부스키의 모래온천이나 기리시마의 계곡온천을 이용하고 싶을 때는 이와사키 호텔 체인을 권한다. 호텔은 물론 골프장, 택시와 버스 여객선을 아우르는 운송업까지 갖춘 가고시마에서 가장 큰 그룹이다. 이와사키호텔 서울사무소 (02)598-2952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