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란 게 참 일방적이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주방 안에서 요리사의 판단에 따라 재료들이 선택되고 잘리고 섞이고 익는다. 그렇게 완성돼 나간 요리가 주문한 손님의 입맛에 딱 맞으면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애써 만든 요리가 애처롭게 남겨질 수밖에. 대부분 손님과 요리사 사이의 소통은 주문할 때 웨이터가 묻는 "미디엄? 웰던?"이나 손님이 요청하는 "양 좀 많이" 정도다. 간접 소통이다. 그것도 아주 단순한.
하지만 스시(초밥)는 다르다. 도쿄식(에도마에∙ 江戶前) 정통 스시를 고집하는 요리사들은 손님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그 마음을 읽는다. 그렇게 잘 만든 스시는 그래서 투박하지 않다. 따뜻하고 섬세하다. 미각뿐 아니라 마음까지 채워준다.
젓가락 들지 않는 禮
무사계급이 최고 권력을 누리던 17~18세기 일본 에도시대. 당시 도쿄 거리에는 지금의 우리나라 포장마차처럼 생긴 가게가 곳곳에 생겨났다. 매일 끼니를 걱정할 필요 없는 중산층과 귀족들은 이런 가게에 자주 들렀다. 웨이터가 따로 있을 턱 없던 포장마차에서 요리사는 직접 손님의 주문을 받아 그 자리에서 싱싱한 생선으로 스시를 만들어 대접했다.
그 포장마차가 점점 음식점으로 정착하면서 스시는 고급요리로 자리잡았다. 스시와 함께 회와 튀김 찜 초무침 식사까지 곁들이는 스시 가이세키(코스요리)는 이제 일본에서도 최고의 외식 메뉴 가운데 하나다. 정통 스시 가이세키는 만들 때마다, 만드는 사람마다 메뉴가 조금씩 달라진다. 요리사가 손님과 대화하면서 기호나 취향에 맞춰 바꾸기 때문이다. 수십 년 스시를 만들어온 장인들은 그날의 날씨, 심지어 손님의 몸 상태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할 줄 안다.
이런 스시를 알아보는 손님들은 젓가락을 쓰지 않는다. 에도시대처럼 손으로 먹는다. 젓가락을 들지 않는 게 손으로 정성껏 만들어준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의 고급 스시 식당에선 식탁 주변에 손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흐르게 해둔다. 손님들은 또 요리사에게 자신의 기호를 알릴 줄 안다. 등 푸른 생선은 좋아하지 않는다든지, 와사비(고추냉이)를 많이 넣어 달라든지 요청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도쿄식 정통 스시를 선보이는 곳이 국내에도 있다. 17년간 일본 현지에서 에도마에 스시를 만들어온 권오준 셰프가 서울 강남구 논현동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의 일식당 만요에 최근 둥지를 틀었다. 20년 가까이 수많은 손님과 소통해온 권 셰프는 손님의 외모나 대화만으로 스시 맛의 강약을 조절한단다. 예를 들어 체격은 좋은데 운동량이 적은 손님에겐 좀 싱겁게, 땀을 많이 흘리는 일을 하는 손님에겐 좀 짜게 대접한다. 권 셰프는 "주방에서 만드는 다른 음식과 달리 손님과 마주보며 만드는 스시는 먹는 순간 맛있어 하고 행복해 하는 손님 얼굴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껍질과 속살 사이
봄철 스시 재료로 가장 맛있는 생선은 도미다. 이맘때부터 여름 초입까지 기름기가 차오른다. 일본 가정에선 전통적으로 딸이 3, 5, 7살이 된 해 봄에 왕족이나 장군의 부인이 되라는 의미에서 큰 잔치를 했다. 그때 주 요리가 도미 스시였다. 입학식 졸업식 결혼식이 이어지는 봄에 많이 먹어온 도미 요리에는 축하의 의미도 담겨 있다.
도미 스시는 날 생선을 안 쓴다. 손질한 도미 아래에 다시마를 깔고 그 위를 또 다시마로 덮어 하루 동안 둔다. 다시마는 정통 도쿄식 스시 고유의 맛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재료다. 필수아미노산 중 하나인 글루탐산이 먹어도 또 먹고 싶게 만드는 감칠맛을 낸다. 다시마에 절여둔 도미에 스며든 감칠맛은 입 안에서 스시가 사라져도 오랫동안 맴돈다.
스시 가이세키에서 도미와 광어 방어 같은 흰 살 생선은 주로 초반에 나온다. 기름기가 적어 담백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식사를 시작하라는 배려다. 이후 기름기 풍부한 참치, 고등어 학꽁치 갈치 같은 등 푸른 생선 순으로 나오는데, 가짓수가 모두 20여 가지나 된다.
권 셰프의 스시 가이세키에서 맛볼 수 있는 독특한 요리는 붕장어(아나고)와 염소고기(노랑수염고기, 긴따로) 스시. 생선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는 껍질과 살 사이다. 갓 잡은 붕장어를 삶아 껍질 부분만 살짝 구워내면 입 안에서 껍질의 고소함과 바로 밑 속살의 부드러움이 자연스럽게 합쳐진다. 맛이 강한 소금이나 간장 대신 곱게 간 히말라야산 암염으로 간을 해 붕장어 고유의 맛을 그대로 살리는 것도 비결이다. 염소고기는 잡아서 포를 떠 소금을 살짝 뿌리고 식초물에 절인다. 이걸 건져 냉장고에 넣고 7시간 숙성시키면 다시마와는 또 다른 감칠맛이 난다. 염소고기 스시 역시 먹기 직전 히말라야산 암염으로 간 한다. 일반 새우보다 단맛이 강한 보탄새우와 씹히는 맛이 일품인 코끼리조개 스시도 평소 여간 해선 맛보기 어렵다. 채소도 훌륭한 스시 재료다. 특히 요즘 같은 봄철엔 두릅이 제격이다. 살짝 데쳐 母첩?우려낸 물에 절여 초밥에 올린다.
재료마다 일일이 손이 가는 정통 도쿄식 스시는 그래서 하나하나 맛이 다르다. 혀뿐 아니라 코도 눈도 스시를 느낀다. 하나 먹고 다음 스시를 먹을 때 파래를 바싹 말려 갈아 만든 파래소금에 찍은 오이나 초생강으로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면 남다른 맛이 한층 더해진다.
여성을 위한 8g
스시 맛을 좌우하는 건 생선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밥이 더 중요하다. 정통 도쿄식 스시에선 무쇠솥으로 밥을 한다. 무쇠솥 안에서도 가운데 있는 밥을 골라 쓴다. 사방에서 열을 받아 전분이 특히 많이 나오고 맛도 가장 좋기 때문이다. 무쇠솥 한가운데에서 푼 밥에 설탕과 다시마 식초 등을 섞어 1주일간 절여둔 양념(초대리)을 넣고 비비면 초밥이 된다. 초대리 레시피가 바로 스시 장인들 특유의 비법이다.
권 셰프가 스시 하나를 만들 때 집는 초밥의 양은 약 8g. 매번 한결같다. 그 속에 들어 있는 밥알도 세어봤단다. 158~160개다. 초밥과 생선의 비율은 2:3로 만든다. 이 정도가 여성들이 한 입에 넣기 딱 좋은 크기라는 것.
스시에 고추냉이를 넣어야 한다는 것도 편견이다. 정통 도쿄식 스시에선 종종 말린 유자를 갈아 고추냉이를 대신하는 조미료를 만든다. 재료가 유자라는데 희한하게 달거나 신맛보다 매콤한 향이 더하다. 그 매콤함의 정체도 스시 장인의 비밀이다.
보통 일식당에 가면 간장접시가 나와 손님이 직접 스시를 찍어 먹는다. 간장을 밥에 찍기도 하고, 생선에 찍기도 한다. 정통 스시 가이세키에선 요리사가 직접 생선에만 간장을 발라 내놓는다. 그래야 밥알이 떨어지지 않고 손으로 먹기 좋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전복·두릅·생표고… "집에서 스시 만들어 드세요"
집에서도 스시 한번 만들어볼까. 임피리얼 팰리스 호텔 일식당 만요의 김재익 셰프가 엄마표 참살이(웰빙) 스시 요리법을 알려줬다. 전복과 두릅, 생표고 스시의 3가지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밥에 넣고 비빌 배합초와 가쓰오부시 육수가 기본. 배합초는 식초 3큰술, 설탕 2큰술, 소금 1작은술을 섞어 잘 녹인 다음 마른 다시마를 약간 넣어 만든다. 갓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에 배합초를 넣고 잘 비비면 초밥이 된다. 비율은 밥 반 공기에 배합초 3큰술 정도가 적당하다.
냄비에 맥주잔 하나 분량의 물을 끓여 가쓰오부시 5g을 넣은 다음 불을 끄고 20~30분 그대로 놓아둔다. 고운 천에 가쓰오부시를 걸러내면 맑은 육수 완성.
전복(1마리 약 100g)을 솔로 깨끗이 씻어 껍질 통째로 유리용기에 넣는다. 이때 껍질이 바닥 쪽으로 향하게 한다. 강판에 갈아 물기를 제거한 무를 전복 살 위에 얹고 간장을 한 방울 떨어뜨린다. 그 위에 물에 살짝 불려둔 다시마를 덮고 가쓰오부시 육수를 내용물이 3분의 1 정도 잠기도록 붓는다. 랩으로 싸서 전자레인지에 넣고 7분 정도 익히면 일본식 찜통에서 쪄낸 듯한 맛을 흉내 낼 수 있다.
이렇게 요리한 전복에서 내장을 꺼내고 적당한 크기로 썰어 잘 비빈 초밥 위에 얹는다. 기호에 따라 고추냉이(와사비)를 함께 얹는다. 전복 위에 내장을 약간 썰어 얹어도 된다. 김밥용 김을 길게 잘라 띠를 만들어 전복과 초밥을 고정시키면 먹기에도 보기에도 좋다.
두릅 스시는 훨씬 간단하다. 두릅 50g을 잘 손질해 물에 살짝 데쳐낸 뒤 물기를 제거한다. 가쓰오부시 육수 3큰술에 간장 한두 방울을 떨어뜨린 다음 여기에 두릅을 20분 정도 담가둔다. 건져내 준비된 초밥에 얹고 김 띠로 고정하면 두릅 스시 완성.
산에서 나는 쇠고기라 불리는 생표고버섯은 꽈리고추와 함께 스시를 만들면 잘 어울린다. 냄비에 간장과 청주 3큰술, 설탕과 맛술 2큰술씩 넣고 끓인다. 약간 걸쭉해지면 생표고 10g과 꽈리고추 1개를 넣고 졸인다. 다 졸여낸 표고를 고추냉이와 함께 초밥 위에 얹고 그 위에 꽈리고추를 얹는다. 김 띠로 고정하면 색다른 생표고꽈리고추 스시가 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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