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리하다’, ‘아니꼽다’, ‘얄궂다’, ‘세리하다’, ‘더부룩하다’, ‘화끈거린다’, 뒤집힌다’, ‘뻑적지근하다’, ‘뒤집힌다’, ‘쥐어짜는 듯하다’, ‘훑어 내리는 듯하다’, ‘조이는 듯하다’ 등등. 한국인이 말하는 ‘배가 아프다’는 표현은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부분 배가 아프면 모두 위장에 병이 생긴 것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전혀 그렇지 않다.
위식도 역류질환
윗배에서 통증을 느끼면 위식도 역류 질환일 가능성이 높다. 위산이 주 성분인 위액이 식도로 역류해 들어와 염증을 일으키고 이상 증상을 유발하는 질환이다. 비만인구가 늘어나면서 위식도 역류질환이 급증하고 있다.
위산이 역류하면서 신물이 올라오고, 가슴 쓰림이나 흉부 작렬감(heart burn)이나 가슴통증, 윗배 아픔 등이 생긴다. 가슴 쓰림이나 흉부 작렬감은 갑자기 오목가슴(명치)에서부터 타는 듯이 통증이 상부로 목 밑이나 귀밑으로 번져 나가는 증상이다. 이런 증상이 늘 있으면 참기 어렵지만 이따금씩 생기는 사람이 많으며, 담배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신 뒤, 어떤 특정 음식을 먹은 뒤 나타난다. 주로 밤에 심해지지만 낮에도 생길 수 있다. 증상이 나타나면 물을 마셔 식도를 씻어내고 식도 내용물을 중화시키면 가라앉힐 수 있다. 민영일 소화기전문 비에비스 나무병원 대표원장은 “서양에서는 위식도 역류질환이 오래돼 식도암이 생기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식도암이 식도 하부에 생기면 덩어리 음식을 삼키기 힘들고, 나중에는 묽은 음식마저 넘기지 못하게 된다.
대상포진
대상포진은 피부에 물집이 생기는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흔히 피곤할 때 생기는 입술 주위의 물집과 비슷하지만 바이러스의 종류가 다르다. 우리 몸의 피부 어디에든지 생길 수 있다. 두피와 코 속, 귀 속, 항문 주위 등 들여다 보기 힘든 부위에 생기기도 한다. 띠 모양으로 물집에 생긴다고 해서 ‘대상(帶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대상포진은 물집이 나타나기 전부터 병변이 생길 자리가 얼얼하며,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전기가 닿는 것처럼 아프다. 물집이 생겨야만 진단이 가능하다. 배 주위에 대상포진이 생기면 배 속에 마치 금방 수술을 해야 할 정도로 심한 통증이 생긴다. 대상포진이 의심되면 배의 피부에는 물집이 보이지 않더라도 등 쪽에서 보이는 경우가 있으므로 반드시 등도 살펴보아야 한다.
심장질환(협심증)
가슴 한복판에서 망치로 내리치는 듯한 통증을 느끼거나 동아줄로 죄는 것처럼 심하게 아프다. 계단을 올라가거나 뛰는 등 심한 운동으로 심장이 빨리 뛰거나 일을 많이 하게 될 때 상대적으로 심장 근육에 가는 피가 모자라서 생긴다.
가만히 있으면 대개 5분 정도 지나면 가라앉지만, 이런 단계를 지나 심근경색이 되면 통증이 더 심해지며 오래 지속되고 양팔 겨드랑이 안쪽까지 번져 나가기도 한다. 간혹 윗배나 오른쪽 윗배가 아프다. 특히 심장 아래쪽이 심근경색이 되면 이런 증상이 심해져 배에 담석증 발작 등 다른 병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피가 심장에서 몸으로 제대로 나가지 못하게 되면(심부전증) 간에 피가 차고 피가 고이게 되면 간이 부어올라 숨이 차고 오른쪽 윗배가 아프게 된다. 간을 싸고 있는 막이 갑자기 팽창하기 때문이다. 만성 심부전증으로 악화하면 오히려 오른쪽 윗배의 통증은 사라진다.
폐ㆍ콩팥 질환
양쪽 폐 하엽에 폐렴이 생기면 때로는 윗배나 양쪽 윗배가 아프게 된다. 특히 어린이는 심하게 통증이 생기고, 발열과 구토가 동반된다. 따라서 자녀가 구토ㆍ복통 등 소화기 증상과 함께 열이 난다면 폐렴일 수 있다.
콩팥에서부터 배가 아픈 것을 신장성 산통(疝痛ㆍ배가 주기적으로 아픈 증세)이라고 한다. 이는 콩팥 속에 있던 돌(결석)이 오줌길(요로)로 나가다 걸려 요로 경련을 일으킬 때 생기는 통증이다.
콩팥을 복부초음파검사를 하면 작은 결석이 콩팥에 박혀 있는 경우가 흔한데, 결석이 움직이지 않으면 가끔 소변을 현미경으로 살펴봐야만 알 수 있을 정도로 피가 섞일 수 있지만 대개 통증은 없다. 문제는 결석이 요로로 빠져 나갈 때다. 요로 결석에 의한 통증은 한쪽 옆구리에서 느껴지며, 요로 어디에 걸렸는가에 따라 통증 부위가 달라진다. 걸린 장소가 방광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허리 아랫부분과 샅 쪽이 아프다. 심하면 복통과 잘 구분되지 않고, 장 마비가 일어나 배에 심하게 가스가 찰 수도 있다. 요로 결석은 물을 많이 마시고 운동을 하면 대부분 저절로 방광으로 떨어져 소변으로 배출된다.
골반질환과 임신
골반 통증은 자궁과 자궁 근처의 나팔관, 난소 등 자궁 부속기관에 급ㆍ만성 골반염, 자궁내막증, 자궁 외 임신, 난소 낭종이 터지거나 꼬이는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생긴다. 이 때 통증은 배의 가장 아랫부분 바로 불두덩 위에서 느껴진다. 클라미디아균이나 임질균 등 성병균에 감염되어도 오른쪽 윗배가 아프고, 숨쉬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결리기도 한다.
척추질환
척추 통증은 특히 노년층에서는 배가 아픈 것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고용곤 연세사랑병원 대표원장은 “척추에서 유발된 복통은 신체의 자세에 따라 성질이 변하는 경우가 많아 누워 있으면 괜찮다가도 오래 걷거나 서 있으면 아파진다”고 말했다. 허리가 앞으로 휜 환자 중에서 배가 아프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이는 배가 눌리기 때문이다. 특히 척추 가슴부위(흉추)의 추간판탈출(디스크)이나 척추에 생긴 종양으로 생긴 통증을 배에서 감지함으로써 복통으로 오인하기도 한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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