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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이건 나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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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칼럼] 이건 나라도 아니다

입력
2011.03.0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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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주 싫어하는 비판형식이 있다. 예를 들어 "구제역으로 죽은 소ㆍ돼지 피가 강을 이루고, 물가는 천정부지 치솟고, 서민경제는 바닥이고, 비리ㆍ범죄사건은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고, 대학등록금으로 허리가 휘고…"하는 식이다. 여기에 "숭례문이 불탔을 때부터 알아봤다"는 예언적 통찰까지 곁들여지면 이 나라는 하늘조차 어쩌지 못하는 구제불능의 아수라장이 된다.

각기 원인과 현상이 다른 사안들을 몽땅 싸잡아 보는 이런 식의 비판은 감정적 카타르시스용은 될지언정, 진지한 성찰을 통한 합리적 진단과 치료방안 모색을 가로막는다. 세상사란 밝고 어두운 양면이 늘 병존하는 것이므로 반대쪽 선택에 따라 똑같은 사회를 지상천국, 태평성대로 만들 수도 있다. 걸핏하면 특정 사안을 나라 전체의 문제로 확대하려 드는 시각도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하기 십상이다.

갈 데까지 간 막장 상하이스캔들

그런데 도저히 부분적 돌출사안으로 치부할 수 없는 추문들이 잇따른다. 이른바 '상하이 스캔들'은 차마 나라 일을 하는 자들의 행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다. 한마디로 줄여 신분도 불분명한 30대 중국 유부녀 한 명을 놓고 상하이 총영사관의 외교관들이 추잡한 치정다툼을 벌인 사건이다. 거명된 이들은 모두 외교부, 법무부, 지경부, 경찰 등 각 정부기관에서 선발된 최고 수준의 엘리트 공직자들이다.

불륜 대자보가 동포사회에 나붙고, 진실된 사랑을 호소하며 손가락(처음엔 팔이라고 썼다가 무서웠는지 고쳤다)까지 잘라 보이겠다는 약속이 오가고, 실연의 분노를 보복불륜으로 되갚았다고 하고…, 아마 여러 막장드라마 작가들이 그 동안 받은 비난에 억울해하면서, 실제 현실에도 훨씬 못 미치는 스스로의 상상력 부족을 가슴 치며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그뿐인가. 유력 차기 대권주자와 여당 최고 실세, 주중대사 등이 이 여성에게서 조력을 받은 사실도 알려졌다. 국가간 고급외교를 정체불명의 치정극 주인공에게 의존한 셈이니 이런 위험한 코미디가 없다. 총체적 책임을 통감해야 할 김정기 전 총영사란 이는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정ㆍ관계 주요인사들의 휴대폰번호 등 유출정보에 대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자료"라고 반박했다. 전화번호가 도청의 기본정보라는 초보적 보안의식조차 없음을 아무렇지 않게 내보이면서도 뭐가 잘못이냐는 투였다.

더 기막힌 건 또다시 노출된 국가기관 간 갈등과 다툼이다. 김씨는 반목하던 부총영사의 소속기관 국정원에 공개적으로 공격의 화살을 돌렸다. 지난번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침입사건 때도 국정원과 군 간의 갈등설이 공공연하게 떠돌았다. 기관간 반목이 이 정도로 일반화해 있는 상황에서 국가이익과 국민보호 등의 책무를 운운하는 건 부질없다. 선거 때 잠깐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해서 별 납득할 만한 경력도 없는 이를 자질 검증도 없이 단박 요직에 발탁해 결국 후유증을 낳거나, 일찍이 문제를 인지하고도 이런 '성분'을 고려해 조사를 덮어 뭉개버리는 따위의 행태는 하도 자주 접해서 이젠 별스럽게 와 닿지도 않는다.

몰가치적 성과주의 국정의 산물

'상하이 스캔들'은 세상이 바뀌어도 국가운영의 기본은 여전히 건강한 도덕적ㆍ윤리적 가치에 기반해야 함을 분명하게 재확인시킨다. 현 정부가 늘 주장하는 실용주의는 과정이 어떻든 당장 가시적 결과만 내면 된다는 조급한 물신적 성과주의에 다름 아니다. 비판에 귀 닫은 채 그저 말 잘 듣고 취향에 맞는 이들로 온통 자리를 채워, 그들만 독려하면 눈부신 성과를 내리라고 믿는 것은 착각이다.

부당하게 배제된 이들은 불만을 키우고, 벼락감투를 쓴 이들은 제 주제 모른 채 설치며 이해다툼을 벌이는 모습이 MB식 실용주의의 이면이다. 상하이 스캔들은 정확히 그 연장선상에 있는 상징적 사건이다. 시류 타는 데나 능한 정치적 부나비들의 속성상 유사한 부작용은 정권이 후반으로 치달을수록 더욱 커져, 갈수록 제어하기도 어려워질 것이다.

총망라식 비판이 내키진 않지만 동조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건 나라 꼴이 아니다.

이준희 논설위원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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