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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에너지위기와 빛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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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에너지위기와 빛공해

입력
2011.03.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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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 대책으로 정부가 에너지 위기 '주의'경보를 내리면서 야간조명이 꺼져 서울 도심이 어두워졌다. 일부 업소는 손님이 줄겠지만 불빛이 많이 사라진 밤거리를 보니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그 동안 서울의 밤은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았나 싶다. 건물 옥상이나 간판 조명이 너무 밝아 대낮이나 다름 없는 곳이 많았다. 유흥업소나 백화점 같은 상업용 건물 만이 아니라 최근 지어진 아파트도 대부분 장식용 조명을 하고 있다. 한강다리도 멋있게 보이려 빛을 쏘았다. 언뜻 보기에 판타지 같은 분위기가 연출돼 좋은 듯하지만 눈이 아프고 어지러울 정도로 현란한 곳도 많았다.

몇 해 전부터 빛공해란 말로 과도한 인공조명의 부작용이 부각되기 시작해 이제는 그다지 낯설지 않게 됐다. 맨눈으로 밤하늘에서 볼 수 있는 별이 육천 개 정도라고 하는데, 인공조명이 강한 서울에서는 20~30개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년 전 국립환경과학원이 밤에 매미가 우는 곳을 조사했더니 공통적으로 가로등 불빛이 강한 곳이었다. 밝은 빛 때문에 매미가 밤을 낮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서울 압구정동의 밤하늘이 경기 파주시보다 22배나 밝다는 조사도 있었다.

최근에는 가로등이나 건물의 광고판 불빛이 집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불면증을 호소하면서 대책을 요구하는 민원이 늘어나는 추세다. 두꺼운 커튼을 치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는 집이 많아졌다. 밝은 불빛은 생태계를 교란할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두통, 소화불량, 내분비계 변화 등으로 질병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의학적으로도 입증됐다. 컴퓨터 모니터에서 나오는 약한 빛조차 인체의 면역력을 약화시킨다고 하니, 그보다 수백 배나 더 밝은 조명이 얼마나 해로울지는 짐작할 수 있다.

선진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빛공해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도시디자인의 모범도시로 손꼽히는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네온사인이 철저히 규제된다. 이 도시는 광장에 위치한 쇼핑몰이나 극장, 공연장 등 문화시설 외에는 서울같이 화려한 네온사인을 찾아볼 수 없다. 광고에 대한 제한이 엄격하고 특히 주택가에서는 조명이 들어가는 네온사인은 함부로 내걸 수 없다. 개인 소유의 건물이라도 시민들의 눈길이 닿는 곳은 주인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국내에서는 빛공해에 대한 규제가 없다가 지난 1월 서울시가 '빛공해 방지 및 도시조명관리 조례'를 시행한 것이 처음이다. 건물 야간 조명을 해가 진 뒤 30분 후부터 오후 11시까지만 허용한다는 것인데, 공공부문에만 우선 적용되고 민간부문은 7월부터 적용된다. 그러나 상위 법률이 없어 위반해도 처벌할 수 없고 권고 성격이 강해 얼마나 지켜질 지 미지수다.

이번에 에너지 위기경보를 내려 강제로 소등하는 것을 보니 빛공해에 대한 우려보다는 고유가로 돈이 더 많이 지출될 것이라는 걱정이 인공조명의 부작용을 줄이는데 더 힘이 되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의 여러 도시들이 최근 수년간 도시경관 개선이란 명목으로 야간조명을 늘렸다. 밝아져서 좋은 면도 있긴 하지만 비싼 석유로 만든 빛을 필요 이상으로 과소비한 것이 아닌가 싶다. 네온사인으로 도시를 뒤덮는 것은 거친 피부를 화장으로 감추는 것과 마찬가지다. 밤은 어둡고, 낮은 환한 자연의 이치를 지나치게 거스르는 것은 좋지 않다.

남경욱 문화부 차장 kw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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